“거장의 붓질에 꽃이 피고 새가 날다”… 겸재·단원·혜원 등 화첩 첫 공개
입력 2013-02-27 18:24
조선시대 화가들의 화첩은 낱장으로 분리돼 각기 다른 소장자가 보관해온 것이 대부분이다. 화첩 자체가 온전히 전해져 오는 경우는 드물다. 서울 견지동 동산방화랑이 3월 12일부터 31일까지 여는 ‘조선후기 화조화-꽃과 새, 풀벌레, 물고기가 사는 세상’ 전에는 겸재 정선(1676∼1759), 단원 김홍도(1745∼1806), 혜원 신윤복(1758∼?) 등의 화첩이 처음으로 공개된다.
겸재가 1729년 제작한 10폭짜리 ‘백로도첩’은 평소 친하게 지냈던 사천 이병연(1671∼1751)을 위해 그려준 그림으로 하얀 쇠백로 한 마리가 고고한 자태를 뽐낸다. 10폭의 작품마다 대담한 필치로 그린 연꽃, 갈대, 버드나무 등이 쇠백로 한 마리와 짝을 이루고 있다. 겸재의 10폭짜리 화첩도 희귀품이지만 진경산수화가 아닌 백로를 소재로 한 그림도 처음 보는 것이다.
단원의 10폭짜리 ‘수금·초목·충어화첩’은 1748년 정월 경상도 안동의 안기찰방으로 부임하고 나서 그해 여름 안동 지역의 임청각(臨淸閣·보물 제182호) 주인 이의수에게 그려준 것이다. 복사꽃, 죽순과 오죽, 소나무와 거재수나무, 참외와 오이, 내버들과 매미, 황쏘가리와 치어들, 갈대꽃과 게 등을 그린 작품 10점으로 꾸며졌다.
특히 화첩에 딸린 당대 문인 송관자 권정교가 1794년에 쓴 발문에는 ‘洛城(낙성) 河梁人(하량인)’이라고 적혀 있다. 출품작을 선별한 이태호 명지대 미술사학과 교수는 “단원의 고향이 안산으로 알려져 왔는데 낙성(서울) 하량(청계천) 출신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며 “단원의 40대 시절 회화를 보여주는 반가운 화첩”이라고 말했다.
전시회에서는 풍속화로 잘 알려진 혜원의 10폭짜리 ‘화조도첩’과 산수화에 뛰어난 현재 심사정(1707∼1769)의 8폭짜리 ‘화접초충화첩’도 만날 수 있다. 17세기 후반 창강 조속(1595∼1668)부터 20세기 초 운미 민영익(1860∼1914)까지 23명의 화가가 그린 80여점의 꽃과 새, 벌레와 물고기 그림을 한꺼번에 감상할 수 있는 기회다.
이번 전시는 동산방화랑이 2011년 개최한 ‘조선후기 산수화’ 전에 이은 것으로 국내 소장자들로부터 작품을 빌려왔다. 박우홍 동산방화랑 대표는 “작품 공개를 꺼리는 소장자들이 절대 빌려줄 수 없다고 거절해 무릎 꿇고 애원하면서 ‘소장자의 이름은 밝히지 않겠다’는 각서까지 쓰고 빌릴 수 있었다”고 전시 기획 과정의 고충을 털어놨다. 무료 관람(02-733-5877).
이광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