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박균열] 전관예우는 구시대의 유물
입력 2013-02-27 17:26
“우리 사회의 윤리의식 높아지고 행정투명성 강화돼야 해법 찾을 수 있을 것”
좀 오래전의 한 코미디 프로그램 중에 ‘부채도사’가 있었다. 인생 상담이나 개인사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 부채도사를 찾아가서 길흉을 점쳐 달라고 요청하면 부채를 좌우로 흔들다가 자신의 견해를 얘기해준다. 물론 그 개그맨의 익살 때문에 망한다고 하다가도 복채가 얼마인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 노력 없이 뭘 이루겠다는 세태를 풍자한 것이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많은 사람들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마당에 합리적이지도 않은 부채도사의 조언보다는 더 안전한 정보와 광범위한 인맥을 가진 전관의 고위 공직자를 가만둘 리 만무하다. 문제는 전관의 고위 공직자들이 일회성 자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취업을 통해서 여러 가지 부작용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 전관예우(前官禮遇) 문제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전직 고위 관료의 지위 후광을 이용하려고 온갖 수단을 동원한 흔적이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불거져 나오기 때문이다. 특히 판사와 검사들이 퇴직 당시 근무하던 법원과 검찰청 사건을 1년간 수임하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변호사법이 2011년 개정됨에 따라 이를 두고 ‘전관예우금지법’이라 칭하게 되면서부터 이 문제는 본격적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같은 해 4급 이상 공직자가 대형 법무·회계법인에 재취업하게 되면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를 받도록 하는 내용을 담은 공직자윤리법이 개정되었지만 이후 탈락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었다는 사실은 이 법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한다. 이때문에 사회 일각에서는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가 마련한 퇴직 공직자의 취업을 일정 기간 제한하는 내용을 담은 ‘부정청탁 및 이해충돌방지법’을 조속히 입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관예우가 왜 도덕적 윤리적으로 문제가 되는지는 자명하다. 우선 이해관계의 문제이다. 공무원은 공공의 일을 처리하기 때문에 업무와 관련된 많은 정보를 접하게 된다. 공직자들에게 겸직을 금지하는 것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공직을 마친 이후에도 일정조건의 제한을 두는 것도 같은 취지다.
유착(癒着)도 빼놓을 수 없다. 대표적인 것이 정치권과 경제계의 정경유착이다. 전관예우의 문제는 공무원의 권한에 속하는 행정작용을 둘러싼 수많은 이해당사자 간 유착관계다. 정경유착이 정치선진화와 경제민주화의 발목을 잡고 있듯이, 특정 이권을 둘러싼 유착은 퇴임공직자 개인의 생계를 보전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건전성을 해치는 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전관예우의 폐해는 그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의 공정성을 해친다는 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공직자가 현직에서 은퇴한 뒤 다시 취업하는 과정에서 선취한 정보를 제공해 자신이 소속된 새 직장이 큰 이익을 본다면 누가 봐도 공정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전관예우가 만연되어 있는데도 청산 의지가 없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의 도덕불감증이 심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문제는 고위 공직자의 재취업 수준에서 해결할 것이 아니다. 사회의 건전성 제고와 예측 가능한 정책 기반을 굳건히 한다는 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행정의 투명성, 예측가능성, 공정성을 강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과거 정부의 대학경쟁력 강화 정책은 외국의 석학을 대학총장으로 영입하기보다는 그 정책에 대한 평가의 주도권을 쥔 교육부 출신 관료를 영입하는 일로 끝났다. 그렇게 해서 교육부의 평가는 높게 받았을지 모르지만 그 대학의 세계적인 경쟁력이 강화되지 않았음은 불을 보듯 뻔했다.
다만 이 문제로 안보 관련 종사자들의 재취업 문제가 홀대받아서는 안 된다. 이들은 대부분 열악한 환경에서 종사하다 재출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회 안전 분야에서 활용될 소지가 많다. 그동안 특정 업체가 고위 장성급 출신을 바람막이용으로 영입한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박균열(경상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