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고승욱] 프레시킬스
입력 2013-02-27 17:22
전 세계에서 쓰레기장으로 가장 유명한 곳은 미국 뉴욕의 프레시킬스 매립지(Fresh Kills Landfill)다.
1947년 맨해튼 아래쪽 스테이튼섬의 농경지에 조성돼 2001년까지 800만명이 넘는 뉴욕시민이 버린 쓰레기를 받아들였다. 크기는 8.9㎢로 서울 여의도와 비슷하다. 한창 때는 매일 20척의 바지선이 실어 나른 쓰레기 650t이 매립됐다. 문을 닫기 직전 쓰레기 더미가 자유의 여신상보다 25m나 높았다고 한다. 만리장성과 함께 인공위성에서 맨눈으로 볼 수 있다는 ‘찬사’를 받았을 정도다.
프레시킬스의 ‘kill’은 네덜란드어로 수로를 뜻하는 ‘kille’에서 유래했다. 굳이 번역하자면 ‘맑은 물이 흐르는 샛강’ 정도 될 것이다. 실제로 쓰레기매립지가 들어서기 전만해도 이곳은 미국 동부해안에서 손꼽히는 야생동물 서식지였다. 하지만 동음이의어를 무시하고 언뜻 보면 쓰레기장 이름으로는 적격이 아닐 수 없다.
쓰레기 문제에 관심이 있는 전문가나 환경운동가가 아니라면 생소하기만 한 이곳이 한동안 뉴스에 오르내렸다. 뉴욕시가 9·11 테러 직후 세계무역센터(WTC) 잔해 200만t을 이곳으로 옮겼기 때문이다. 이후 과학수사대원 수천명이 콘크리트 더미 속에서 유류품 4257점을 수거했다. 순간적인 폭발로 많은 사람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이들은 칫솔 같은 물건과 시신 조각에서 DNA를 채취해 500여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프레시킬스에서는 지금 거대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수차례 디자인 공모를 거쳐 2008년 시작된 공원화 사업이 그것이다. 2018년이면 ‘프레시킬스 파크’는 센트럴파크보다 2.7배나 큰 도심 속 숲으로 다시 태어난다. 공원화가 끝난 지역 주위에는 고급 주택가가 형성되고 있다.
쓰레기장의 공원화라면 우리나라도 한마디 거들 만하다. 서울의 쓰레기를 15년 동안 쌓아놓았던 난지도가 2002년 월드컵공원으로 탈바꿈한 뒤 서식 동식물이 2배 이상 늘었다. 서울시의 생태계 모니터링 결과다. 맹꽁이, 물장군, 솔부엉이같이 이름만 들어도 푸근한 멸종위기종 생물도 속속 발견됐다. 호주 시드니 올림픽파크, 캐나다 토론토 토미톰슨파크 등 매립지에 세운 공원이 적지 않지만 난지도는 돋보이는 케이스다.
다른 한편에서는 2016년 사용기한이 끝나는 수도권매립지를 놓고 서울시와 인천시가 갈등을 빚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수도권에 살고 있는 2400만명이 쓰레기 대란을 겪기 전에 미리미리 지혜를 모아야겠다.
고승욱 논설위원 swk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