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넘고 물건너 ‘진도의 봄’이 아리랑을 부르네… 봄기운 완연한 진도 ‘남도민요문화길’

입력 2013-02-27 16:57


운림예술촌 봄동밭에서 연두색으로 곱게 단장한 봄이 등고선을 그리며 쉬엄쉬엄 세마치장단으로 첨찰산을 오른다. 신비의 바닷길을 건너온 푸른색 봄과 운림산방 동백나무 군락지에서 한바탕 어깨춤을 춘 붉은색 봄도 흥얼흥얼 추임새를 넣으며 첨찰산을 오른다. 그리고 중중첩첩 수묵화를 그리는 다도해를 배경으로 색색의 봄이 첨찰산 정상에서 진도아리랑을 부른다.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문경새재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 눈물이로구나/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가슴속엔 희망도 많다’

지난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된 진도아리랑은 남도민요의 진수로, 구성진 가락은 진도 여인들의 고된 삶을 대변한다. 밭일하던 할머니도, 장터에서 마주친 아주머니도 틈만 나면 ‘아리 아리랑 쓰리 쓰리랑’으로 시작하는 진도아리랑을 불러 젖힌다. 어머니의 어머니, 그 어머니의 어머니 때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온 진도아리랑은 그렇게 섬사람들의 가슴에 한과 흥으로 자리매김했다.

전남 진도를 한 바퀴 도는 ‘진도아리랑길’ 중 제3코스인 11㎞ 길이의 ‘남도민요문화길’은 진도읍 동외리에 위치한 진도공설운동장에서 출발한다. 진도읍내와 의신면 운림예술촌을 잇는 3.5㎞ 길이의 고갯길은 쉰 살 넘은 장년들이 40여 년 전 진도읍내의 학교를 오가던 추억의 산길.

푹신푹신한 산길은 아직 겨울의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윤기가 반들반들한 초록잎 사이로 함초롬하게 핀 동백꽃 서너 송이가 봄 햇살을 즐기고 있다. 읍내로 가는 아스팔트길이 뚫리기 전 장날마다 막걸리 한두 잔에 불콰해진 섬사람들은 남도민요를 흥얼거리며 구불구불한 이 산길을 수도 없이 넘나들었다.

편백나무 숲이 끝날 때쯤, 다음 달 준공을 앞둔 운림예술촌의 ‘삼별초 테마공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한옥 형태의 삼별초홍보관과 삼별초 궁녀둠벙 등으로 이루어진 테마공원은 외세에 죽음으로 항거한 삼별초와 섬사람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주변에는 왕온의 묘 등 삼별초 흔적이 산재해 있다.

고려는 1232년 몽골이 침공하자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고 30여 년 동안 삼별초를 중심으로 대몽항쟁을 벌였다. 그러나 몽골의 지원으로 정권을 장악한 원종이 수도를 다시 개경으로 옮기고 삼별초의 해산을 명령하자 배중손 장군은 왕족인 승화후 온(溫)을 왕으로 추대한다. 그리고 1000여 척의 배에 군사와 가족 2만여 명을 태우고 진도에 상륙해 용장성에 왕궁을 세우고 저항했으나 여몽연합군에게 참패를 당한다.

삼별초 궁녀둠벙은 진도의 아녀자와 궁녀 등이 몽골에 끌려가 능욕을 당할 바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며 몸을 던진 돈지벌의 큰 둠벙(웅덩이). 비가 오면 여인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던 둠벙은 간척공사로 대부분 메워져 지금은 비가 와야 물이 차는 손바닥만한 연못으로 변했다.

진도는 섬 전체가 숱한 전란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왜군들이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 때 협력했다는 이유로 진도에 상륙해 무차별적으로 살육을 저질렀다. 이 과정에서 진도 남자들은 삼별초 난에 이어 두 번째로 떼죽음을 당한다. 남편과 아들을 잃은 진도 여인들의 한은 진도아리랑, 다시래기, 진도만가 등 소리를 통한 예술로 승화한다. 한갓 섬마을에 불과한 진도에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20여 명의 인간문화재가 존재하는 이유다.

첨찰산 기슭에 위치한 운림예술촌은 진도에서도 향토색 짙은 민속이 가장 많이 남아있는 마을. 마을 옆으로 개울이 비켜간다고 해서 빗기내마을로 불리는 운림예술촌의 주민은 모두가 예인이나 마찬가지. 농사일이 끝나면 저녁마다 마을 전수관에서 남도민요를 부르고 단체관광객들이 마을을 방문하면 빗기내민속전수관에서 민속공연도 벌인다.

마을 개울을 따라 조성된 장승거리 옆 밭에서는 연두색 봄동이 자라고 있다. 봄동은 겨울철 노지에서 재배하는 배추를 일컫는 말로 속이 꽉 차지 않아 볼품은 없지만 달짝지근하고 씹히는 맛이 좋아 겉절이나 쌈으로 인기. 봄동밭 옆에는 전국 생산량의 30%를 차지한다는 표고버섯 재배용 비닐하우스가 비행기 격납고처럼 들어서 있다.

남도민요문화길은 운림예술촌의 정수이자 진도여행 일번지인 운림산방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운림산방은 조선 후기 남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1808~1893)이 살면서 그림을 그리던 곳으로, 미산 허형, 남농 허건 등 그의 후손들이 이곳에서 나고 자라며 남화의 맥을 잇는다. 추사 김정희로부터 그림을 배운 허련은 헌종의 총애를 받았지만 스승 김정희가 죽자 고향으로 내려와 작품 활동을 펼치며 한국 남화의 맥을 형성한다.

첨찰산 자락에 위치한 운림산방은 그 자체가 한 폭의 그림. 꽃봉오리를 맺기 시작한 350년생 동백나무 세 그루 뒤로 오각형의 연못이 있고, 그 한가운데 조성된 섬에는 배롱나무가 미끈한 몸매를 자랑한다. 연못 앞의 한옥은 허련이 그림을 그리던 화실이고 뒤편의 초가집은 허련이 살던 생가.

운림산방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남도민요문화길은 천연기념물 제107호로 지정된 첨찰산 상록수림 속으로 빨려든다. 동백나무를 비롯해 후박나무, 감탕나무, 생달나무 등이 울창한 상록수림은 쌍계사 옆 계곡을 따라 가는 고즈넉한 숲길을 품고 있다. 숲길이 끝날 때쯤 남도민요문화길은 1시간가량 가파른 첨찰산을 올라 정상에 선다.

첨찰산(485m)은 진도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정상에 서면 진도를 비롯해 다도해의 크고 작은 섬들이 360도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봉수대가 위치한 첨찰산 정상과 인접한 진도기상대는 해돋이와 해넘이를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곳이다. 해질녘 농도를 달리하는 진도의 산 능선들이 중중첩첩 겹치고 포개지는 풍경은 한 폭의 수묵화. 희미한 능선이 끝나는 곳에 붉게 물든 바다를 배경으로 크고 작은 섬들이 솟아 있다.

진도기상대에서 구불구불한 임도를 타고 하산한 남도민요문화길은 두목재에서 다시 완만한 산 능선을 타고 뽕할머니의 전설이 전해오는 신비의 바닷길까지 봄마중을 떠난다. 고군면 회동리와 의신면 모도 사이를 연결하는 2.8㎞ 길이의 바닷길은 한 해에 두세 차례 바다가 갈라지며 현대판 ‘모세의 기적’을 연출하는 명소. 김 양식장이 평야처럼 펼쳐지는 쪽빛 바다에서 갓 건져 올린 해산물에는 싱그러운 봄 향기가 묻어 있다.

진도=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