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박영수 위원장 “자치단체장의 무리한 예산집행 반드시 책임 물어야”
입력 2013-02-26 18:20
서울고검장과 대검 중수부장을 역임한 박영수 변호사. 그는 검찰 재직 때 ‘특별수사의 살아 있는 전설’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SK 분식회계 사건, 현대·기아차 비자금 사건,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인수 의혹사건 등 대형 사건 수사를 지휘함으로써 얻은 일종의 별칭이다. 검찰 일각의 반대 의견에도 그는 2명의 재벌 총수를 구속기소했다. 그래서 언론에서는 아직도 ‘재계의 저승사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가 지난해 8월부터 세금을 낭비하는 지자체를 혼내주는 일에 팔을 걷어붙였다. 대한변호사협회 지자체세금낭비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서울시의 세빛둥둥섬 사업과 관련해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12명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하고, 용인경전철 사업에 대해 주민감사를 청구한 것은 1차 결과물이다.
-아직 정식으로 개장 못한 세빛둥둥섬 사업엔 어떤 문제점들이 발견됐나.
“한강은 공공재다. 이곳에서 수익사업을 하려면 법률적 근거가 있어야 하며, 의회의 사전 동의와 같은 법적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러나 서울시는 이 두 가지를 모두 무시했다. 특히 공유수면에 수익시설을 만들려면 BTO 방식으로 해야 한다. 민간사업자가 직접 시설을 건설해 지자체에 기부채납하는 대신 일정기간 사업을 위탁경영해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민간자본은 운영권을, 지자체는 소유권을 갖는 것이다. 그러나 민간사업자는 이 방식을 싫어한다. 사업의 리스크가 높기 때문이다. 대신 민간사업자는 건설을 마친 뒤 그 시설을 일정기간 운영하고, 운영기간이 종료되면 지자체에 무상으로 양도하는 BOT 방식을 선호한다. BOT 방식으로 할 경우 사업이 실패하면 지자체가 책임져야 할 부분도 생기고, 사업자는 운영기간 중간에 시설을 담보로 거액을 대출받을 수도 있고, 30년이나 운영권을 가질 수도 있다. 서울시는 BOT 방식으로 세빛둥둥섬 사업을 강행했다. ‘공유재산 및 물품관리법’을 위반한 것이다. 옷만 사복(私服)을 입혀 놓은 셈이다.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너무 서두르다보니 민간사업자에게 양보한 결과 아닌가 싶다.”
-세금이 들어갔나.
“오 전 시장 지시로 주택사업을 하는 SH공사가 이 사업에 투자했다. 세금이 들어간 것이다. 조사 결과 SH공사는 200억원의 보증채무를 포함해 300억원가량 손해를 볼 것으로 추정된다. 가뜩이나 부채규모가 어마어마한데 재정부담이 가중될 것 같다. 그만큼 민간사업자는 이익을 봤다. 그리고 SH공사가 이런 수익사업에 투자한 것 자체도 위법이다.”
-구체적으로 얼마가 낭비됐는가.
“세빛둥둥섬에 지금까지 투입된 액수는 1390억원이다. 이를 중심으로 검찰에서 자세히 산출해낼 것으로 본다.”
-검찰의 수사 진전 정도는.
“우리가 검찰에서 고발 취지를 설명해야 하는데 아직 그런 단계도 안 왔다. 쉬운 수사가 아니다. 조금 시간이 걸릴 듯하다.”
-오 전 서울시장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반발하고 있는데.
“오 전 시장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특위에서는 법적으로 매우 문제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세빛둥둥섬 조사 과정에서의 비화(秘話)는 없나.
“비화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이런 일이 있었다. 지난 14일 1차 조사결과를 발표하기 전인 1월 중순 한 언론사가 특위 활동과 관련해 잘못된 보도를 내보낸 적이 있다. 그러자 오 전 시장 측에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그 이전까지 오 전 시장 측은 특위 조사활동에 전혀 협조를 하지 않았다. 그러더니 보도를 보고는 전화를 걸어와 무고하다며 만나자고 했다. 하지만 오 전 시장 측이 특위 질의서에 대한 답변서를 보내오지 않아 만나지 않았다.”
-용인경전철 사업에 대해선 주민감사를 청구했는데, 이유가 뭔가.
“10년간 1조원 이상 들어간 그 사업에 대해선 검찰 수사가 이뤄졌고 공소시효도 지나 형사상 조치할 게 별로 없었다. 그래서 민사상 주민감사를 청구한 것이다. 감사 결과가 나오면 이를 분석해서 관련 공무원들에게 배상을 요구할 계획이다.”
-지자체의 경전철 운영비를 국고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의 도시철도법 개정안이 발의된 적이 있는데.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입법 발의된 적이 있다. 지자체가 경전철 사업 시행자에게 운영 수입의 부족분을 보조하는 경우 이를 국고에서 지원해야 한다는 게 골자다. 용인시와 경전철 사업을 추진 중인 경기 의정부시, 경남 김해시 등이 지역구 국회의원을 통해 입법을 요구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지난해 10월 지자체세금낭비조사특위 위원장 명의로 반대 성명을 내 제동을 걸었다. 민간투자사업의 당사자도 아닌 정부에 일방적으로 재정적 책임을 전가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더욱이 지자체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우려가 크다.”
-2차 조사 대상은.
“아직 검토 중이다. 강원도 지역의 리조트 시설이 무리하게 세워져 세금이 또 투입돼야 하는 곳이 두 군데 있다. 평창의 알펜시아와 태백의 오투리조트다. 재정자립도가 취약한 강원도는 1조원 이상의 빚을 갚아야 할 처지다. 다른 지자체 사업과 관련해서도 시민들의 제보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
-대한변협 내에 특위를 만들게 된 동기는.
“무료법률상담 등 그동안 변호사들의 활동이 수동적이고 방어적인 수준에서 ‘찾아가는 봉사’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다고 보면 정확할 것 같다. 지방자치제도가 시행된 지 오래됐으나 아직도 지자체장의 선심성 공약으로 혈세가 낭비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걱정이 큰 상황이어서 특위를 만들게 됐다.”
-고되지는 않나.
“힘들다. 1차 조사결과를 발표하기 전까지 밤샘작업도 수시로 했다. 하지만 보람을 느낀다. 특위에서 함께 일하는 16명의 변호사들, 그리고 5명의 자문위원들도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보수도 없는데 특위에서 일하고 싶다고 신청한 변호사들이 40명이나 된다. 그래서 현재 2개인 조사팀을 3개로 늘리는 방안을 강구 중이다.”
-조사하면서 애로사항이 있다면.
“지자체와 산하 기관 공무원들이 전혀 협조를 안 해준다. 가장 필요한 것이 내부 감사서류인데, 선뜻 내주는 일이 없다. 이런 어려움은 앞으로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열심히 하다 보면 길이 생길 것으로 믿는다.”
-세금 낭비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제도적인 보완책은 마련하고 있나.
“국민이 직접 국가기관의 세금낭비를 감시하고 손실을 보전할 것을 청구하는 ‘재정건전성을 위한 국민소송법’을 입안해 입법 청원한 상태다. 이 법이 원안대로 국회에서 처리되면 지자체장의 무리한 예산 집행이 크게 줄어들 것으로 믿는다.”
그는 조사활동이 마무리되면 백서를 낼 계획이라고 전했다. 특위 활동에 대한 질문은 이것으로 끝내고 대검 중수부 폐지 움직임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중수부를 폐지하자는 주장에는 중수부가 정치적으로 좌지우지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하지만 검찰총장을 객관적이고 투명하게 뽑으면 정치적 입김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다른 조직이 아닌 바로 검찰이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정치적 중립을 지킬 수 있다고 본다. 중수부 대신 공직자비리수사처가 신설되더라도 그 장(長)은 대통령이 임명하게 될 것이고, 그러면 정치적 야합이 심해질 가능성이 있다. 또 특수수사에 반드시 필요한 디지털 분석, 회계 분석, 계좌추적 능력을 다 갖추고 있는 곳이 바로 중수부다. 곧 없어질 것으로 보이는데, 여하튼 중수부 폐지에 반대한다. 아울러 검찰개혁의 핵심을 기구 개편에서 찾으면 안 된다. 서열 경쟁을 부추기는 ‘기수문화’와 검찰총장의 국회 불출석 관행 등 잘못된 검찰문화를 고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그는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상임감사라는 직함도 갖고 있다. 이 재단은 매년 정부에서 받는 250억원과 30억∼50억원의 기부금으로 탈북민들의 취업과 직업훈련, 청소년교육, 의료 등을 지원하는 곳이다.
“사선(死線)을 넘어 남한으로 온 북한이탈주민이 2만4000여명입니다. 정부에서는 이들에게 대우해줄 만큼 해준다고 하는데, 이들은 불만을 표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통일의 선봉에 설 사람들입니다. 국민들이 북한이탈주민들에게 좀 더 많은 관심을 갖고 보다 따스하게 보듬어주기를 바랍니다.”
▨박영수 변호사는
△제주 출신(61) △서울 동성고 △서울대 철학과 △수원지검 강력부장 △서울지검 강력부장 △대검 공안기획관 △서울지검 2차장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서울고검 차장 △대검 중앙수사부장 △서울고검장 △법무법인 삼호 대표변호사
만난사람=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