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의구] 대통령 취임사

입력 2013-02-26 17:36

미국 대통령 중 가장 긴 취임연설을 한 사람은 9대 윌리엄 헨리 해리슨 대통령이었다. 인디언과의 전투에서 연전연승한 군인 출신인 그는 1841년 3월 4일 차가운 비가 내리는 가운데 외투도 걸치지 않은 채 8445 단어나 되는 긴 연설문을 100분 동안 읽어 내려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의 재임기간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짧았고, 재임 중 사망한 첫 대통령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폐렴에 걸려 불과 한 달 만에 사망했기 때문이다.

가장 짧은 연설은 조지 워싱턴의 두번째 취임 연설이었다. 1793년 3월 4일 필라델피아 국회의사당 상원 회의장에서 행해진 연설은 135 단어에 불과했다. 이후 가장 짧은 취임연설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1945년 네 번째 취임사로 559 단어였다.

미국에서 가장 자주 인용되는 취임연설은 남북 전쟁 말기인 1865년 3월 4일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이 했던 재임연설이다. “지금은 첫 취임식 때처럼 긴 연설을 할 계제가 아니다”라며 허두를 꺼낸 링컨은 “이제 누구에게도 적의를 갖지 말고, 모든 이에 선의를 갖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보게 하신 그 정의로움에 대한 굳은 확신을 가지고 우리에게 당면한 일을 끝내려 노력합시다. 이 나라의 상처를 꿰매고, 전쟁의 부담을 짊어져야 했던 사람과 그의 미망인과 고아가 된 그의 아이들을 돌보고, 우리들 사이 그리고 모든 나라들과 함께 정의와 지속적인 평화를 이루고 간직하기 위하여”라고 남북 전쟁 수습을 국정과제로 제시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두려움 자체밖에 없다”던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첫 번째 취임연설이나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조국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물으라”는 연설문도 인구에 회자된다.

박근혜 대통령의 25일 취임사도 짧은 편에 속한다. 5300여자의 연설에 21분이 걸렸다. 우리 역대 대통령들의 취임사에서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단연 국민이다. 박 대통령은 57번을 사용했고, 전임 이명박 대통령도 30번을 사용했다. 박 대통령 연설문에는 행복이란 단어가 20번, 문화가 19번, 창조경제와 신뢰가 각각 8번 등장했다. 나라를 불문하고 국정최고책임자의 취임연설에는 당대의 국정운영 기조가 실린다. 그 내용과 실천의지가 중요하지 길고 짧음은 다툴 바가 아니다. 박 대통령 취임사대로 희망의 새 시대가 열리기를 기대한다.

김의구 논설위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