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이근미] 치명적 실수

입력 2013-02-26 18:22


지난 월요일 일 년에 서너 번 정도 만나는 동인 모임에 나갔다. 40대부터 60대까지 여성 열 두 명이 모였는데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다가 성폭행 문제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한류스타가 화제로 떠올랐다. 자신보다 10살은 어린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핫뉴스를 쏟아내는 그 남자 배우에게 뜻밖에도 동정의 여론이 우세했다.

아직 피해자라는 여성의 신고와 남자 배우 측의 심경 발표가 나왔을 뿐 사실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더 작용한 듯했다. 얼마 전 종영한 인기드라마의 주인공이었던 그 배우에게 배신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깔려 있었다. 10년 무명이었다가 최근 종영한 드라마에서 확실한 꽃미남 주연배우로 등극한 그가 그렇게 주저앉을까봐 안쓰럽게 생각하는 마음도 발동했다.

무죄로 밝혀지더라도 2∼3년은 주연을 맡기 힘들 테고, 여론이 잠잠해진들 마흔 가까운 나이에 주인공 차례가 오겠느냐는 견해도 나왔다. 앞으로 늘 선입견이 따라다닐 테니 시청자 입장에서 몰입이 되겠느냐고 말하는 이도 있었다. 결론적으로 사실이라면 용납할 수 없는 일이지만 힘들게 쌓아올린 공든 탑이 일순간에 무너질까봐 안타까워하는 분위기였다. 단 하나, 처음 만난 여성과 경솔한 일을 벌였다는 점에서는 모두들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이었다.

그날 이후 속속 드러나는 정황이 그 배우에게 점점 더 불리한 쪽으로 가고 있다. 나중에 무죄로 판명난다 하더라도 이미 너무 많은 소문이 퍼졌고, 평판은 나빠질 대로 나빠졌으니 회복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살면서 반드시 피해야 할 것은 치명적 실수이다. 누구나 실수를 하지만 재고의 여지가 없는 실수를 하면 재기가 힘들어진다. 특히 대중을 상대로 일하는 사람이 치명적 실수를 뚫고 다시 일어서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공공이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일을 저질렀고, 설상가상 그 일이 상대에게 피해를 끼쳤다면 용서받기가 쉽지 않다. 거기에 소문과 악평이 곁들어지면 나락으로 빠지게 된다.

치명적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는 삶에 가이드라인을 치고 금 밖으로 나가지 않아야 한다. 매일 ‘시험에 들지 말고, 악에서 구해 달라’는 주기도문을 외우면서 필사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치명적 실수로 내 삶이 무너지는 것도 안 되지만, 그로 인해 타인의 삶을 파괴하는 건 더더욱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니까.

이근미(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