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성기철] 朴 대통령 취임사 감상문
입력 2013-02-25 19:23
박근혜 대통령의 취임연설은 힘이 있었다. 또랑또랑하면서도 단호한 어투와 엄숙하면서도 비장한 표정은 국가원수로서의 강한 자신감으로 비쳐졌다.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의 국정연설을 대하는 듯했다. 그에게 대한민국호의 5년 운명을 맡긴 국민들에게 ‘잘할 것 같다’는 믿음을 줄 만한 취임사였다. 취임연설은 경제부흥과 국민행복, 문화융성을 이루겠다는 각오를 다지는 자리였다.
경제부흥 방안으로 창조경제와 경제민주화를 제시한 것은 시의적절했다. 창조경제는 과학기술 및 IT산업의 획기적 발전과 함께 산업간 경계를 허물어 새로운 시장,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창조경제를 꽃피우는 데 경제민주화가 필수임을 강조한 것도 옳은 방향이다. 며칠 전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경제민주화’를 빼 비판을 받았으나 취임사에선 당당히 자리매김했다.
경제민주화 재천명 돋보여
국민행복의 개념을 구체화한 것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과거 대통령들은 국민 개개인의 행복보다는 국가차원의 발전에 더 큰 비중을 뒀었다. 박 대통령이 국민맞춤형 복지와 함께 교육의 중요성을 특별히 강조한 것은 눈길을 끌 만했다. 문화의 가치를 비중 있게 언급한 것도 과거 정부에서 찾아보기 힘든 대목 아닌가 싶다.
북한 핵위협과 같은 안보위기를 대한민국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를 용납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겠다. 그러면서도 여기에 머물지 않고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믿음직스럽게 와 닿았다. 확실한 대북 억지력을 바탕으로 북한을 화해와 협력의 장으로 이끌어 내는 것은 우리 정부의 숙명적 과제이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남북간 대립·갈등 구조는 하루빨리 타파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민행복 시대를 여는 데 국민 개개인의 역할을 강조한 대목은 이채롭게 들렸다. “나라의 국정 책임은 대통령이 지고, 나라의 운명은 국민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나가는 새로운 길에 국민 여러분이 힘을 주시고 활력을 불어넣어 주시기 바랍니다.” 국민의 전폭적 지지와 협력 없이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인식에서 나온 발언 아닐까 싶다.
대통합·소통 의지는 안 보여
박 대통령은 대선기간 국민대통합과 대탕평 인사를 수없이 다짐했다. 그러나 취임사에선 그런 표현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국민 상당수가 이미 실망감을 갖고 있다. 2개월여 동안 당선인 시절을 보내면서 그는 대통합과는 거리가 먼 행보를 했다. 몇 차례 새 정부 인사에서 대탕평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국민대통합 공약은 휴지조각이 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대선 때 박 대통령을 찍지 않은 48%의 국민을 누가 어떻게 어루만져 줄 수 있을지 앞이 안 보인다.
박 대통령의 최대 약점인 불통(不通)에 대한 개선의지도 보여주지 못했다. 그는 연설 말미 국민들에게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의 이익을 위해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했다. “어려운 시절 우리는 콩 한쪽도 나눠먹고 살았습니다. 우리 조상은 늦가을에 감을 따면서 까치밥으로 몇 개의 감을 남겨두는 배려의 마음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계와 품앗이라는 공동과 공유의 삶을 살아온 민족입니다.” 이런 말도 했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저와 정부를 믿고, 새로운 미래로 나가는 길에 동참해 주십시오.”
하지만 이런 호소와 당부가 일방적인 요구로 비쳐져서인지 공허하게 들렸다. 대신 이런 다짐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는 지역이 어디건, 이념적 지향점이 어느 쪽이건, 나이가 얼마든 상관하지 않고 국민 여러분 모두와 허물없이 머리 맞대고 대화하겠습니다.”
성기철 편집국 부국장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