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전선서 보낸 ‘마지막 편지’… 한국 입양아 출신 사진기자 취재중 희생
입력 2013-02-25 22:36
시리아 사태 취재 중 포탄에 맞아 21일(현지시간) 사망한 한국 입양아 출신의 프랑스 프리랜서 사진기자 올리비에 부아쟁(38)이 생전 마지막으로 보낸 편지가 화제가 되고 있다. 사망 전날인 20일 이탈리아 여자친구 미모사 마르티니에게 보낸 편지에는 공습의 공포와 두려움, 사진에 대한 열정과 살고 싶다는 의지가 그대로 묻어났다. 가난한 한국계 사진기자 부아쟁이 생계를 위해 전선에 뛰어들었다 적은 이 사연은 편지를 입수한 허핑턴포스트가 25일 공개해 세상에 알려졌다.
부아쟁은 지난해 여름부터 올 초까지 시리아 제2의 도시 알레포에서 내전 참상을 취재하다 터키로 나왔다가 사고 며칠 전 다시 시리아에 잠입했다. 그는 편지에서 터키-시리아 접경지역의 병사에게 돈을 주고 지뢰밭을 지나 강을 건넜던 일, 반군들이 자신을 환대했던 모습, 정부군과의 포격전 등을 담담하게 그려냈다.
부아쟁은 특히 외국인 프리랜서에 불과한 자신에게 반군 사령관이 프랑스군의 군사 개입 시점을 묻자 잠시 당황스러워했던 심정을 옮겼다. 그는 “시리아 내전이 2년이 돼 가지만 우리(서방)이 뾰족한 수가 없다는 생각에 부끄러웠다”며 “나는 정치인도 아니고 힘도 없다. 통신사가 원하는 사진만 찍을 뿐, 사진을 덜 찍으면 돈을 그만큼 덜 버는 것”이라고 자괴감을 표현했다.
편지에는 긴박한 전쟁 중에서도 자신이 느꼈던 정체성 혼란, 한국에 대한 그리움도 일부 담겨 있다. 그는 “이 사람들은 동양인처럼 생긴 내가 어떻게 프랑스어를 하는지 궁금해 한다. 엄마는 한국인이고, 아빠는 프랑스인이라고 말해줬다”고 했다. 이어 “아무리 한국이 좋은 나라라고 알려줘도 개발도상국에 취재하러 가면 나를 중국인으로 본다”는 말도 했다.
내전 참상과 직업인으로서의 불안감도 피력했다. 부아쟁은 “오늘은 집과 모든 것을 잃고 지하 또는 동굴에 사는 몇몇 가족을 만나 사진을 찍었다. 하지만 AFP통신에서 (사진을) 받아줄지 확실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견한 듯 편지 말미에 2차 세계대전 당시 리비아에서 전사한 프랑스 군인의 기도를 인용했다. 부아쟁은 “하나님, 다른 사람들이 거절한 것을 주세요. 오늘 밤에 기도를 하는 것은 내일 저의 용기가 부족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끝을 맺었다.
그는 편지를 쓴 다음날 북부 이들리브에서 머리 등에 포탄 파편을 맞았다. 터키 안타키아의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지만 숨졌다고 프랑스 외무부가 24일 공식 발표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생명을 무릅쓴 기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애도했다.
한편 취임 후 처음으로 24일 유럽과 중동 9개국 순방에 나선 존 케리 신임 미국 국무장관이 시작부터 복병을 만났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케리 장관이 참석하려는 ‘시리아의 친구들’ 회담이 시리아 반정부단체인 시리아국가연합의 보이콧으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시리아의 친구들은 시리아 사태 해결을 위한 서방과 아랍권 국가들의 협의체로, 28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회담을 연다. 그러나 시리아국가연합은 22일 성명을 통해 “사태가 계속 악화되는데도 국제사회는 침묵한다”며 회담을 거부한다고 밝혔다.
케리 장관 일정의 하이라이트인 시리아의 친구들 회담이 무산 위기에 처하자 미 국무부는 로버트 포드 시리아 주재 미국 대사를 이집트 카이로에 급파했다. 포드 대사는 이곳에서 시리아 반정부 지도자들에게 회담 불참 의사를 철회해 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