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방우체국-캄보디아 김현태 선교사] (3) 더딘 성장 속에 꽃피는 열매들
입력 2013-02-25 18:50
CCC통해 하나님 만난 제자, 졸업하자마자 의료선교
지난 2월 1일부터 나흘간 캄보디아 전 국왕인 시하누크의 화장식이 있었습니다. 온 나라가 조용하고 엄숙한 가운데 이 일들이 진행됐습니다. 시하누크 전 국왕은 캄보디아의 현대사를 상징하는 인물로 질곡의 현대사 한가운데서 온 몸으로 격어 온 주인공입니다. 그래서인지 국민들이 고인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른 것 같습니다.
그는 캄보디아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하는 것을 지켜봤고, 1960년대 냉전시대 열강의 틈에서 캄보디아를 지키고자 노력했으며, 논 놀의 쿠데타로 소련과 중국, 북한 등에서 망명생활을 했습니다. 이후 그는 폴 포트의 킬링필드 시절 많은 왕족이 죽어가는 것을 본 뒤 피폐해진 캄보디아에 다시 국왕으로 들어와 현대사를 이끌었던 인물입니다.
고인의 화장식은 전적으로 불교문화 속에서 이뤄졌으며, 국민 대다수가 불교신자이기에 매우 성대하게 치러졌습니다. 온 도시에는 조기(弔旗)가 걸렸고 학교와 관공서, NGO들은 휴무했습니다.
이날 저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국민이 전 국왕의 죽음을 슬퍼하며 극락왕생하기를 ‘부엉수엉’(불교식 ‘기도’라는 뜻의 캄보디아 단어)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죽은 자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다. 국왕의 죽음을 슬퍼하지만, 이제 우리는 캄보디아의 슬픈 과거를 상징하던 전 국왕의 죽음을 계기로 아픔과 상처의 과거사는 뒤로하고 앞으로 여러분이 만들어갈 새 나라,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가득 찬 새 나라를 만들어가야 한다. 그 책임이 여러분에게 있으니 이 일들을 위해 하나님께 ‘아티탄’(기독교의 ‘기도’라는 의미의 캄보디아 단어)하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새로운 캄보디아를 만들어갈 것을 기도합니다.
우리 부부가 더 젊었던 시절에 우리를 늘 가슴 벅차게 하던 말이 있습니다. “민족의 가슴마다 피 뭍은 그리스도를 심어 이 땅에 푸르고 푸른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하자.” 이 말들을 들을 때면 지금도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캄보디아는 국민의 95%가 불교를 믿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이 불교는 스리랑카 쪽의 소승불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기독교에 대해서는 매우 적대적입니다. 지금도 시골에서 한 마을에 한 가정이 예수를 믿기 시작하면 온 마을이 그 가정을 핍박하고, 교회가 들어서면 절을 중심으로 마을 지도자들의 탄압이 시작됩니다. 이에 못 이겨 예수 믿기를 포기하는 가정이 아직 많은 것이 이곳 캄보디아의 현실입니다.
또한 캄보디아는 힌두의 영향으로 다신주의 세계관을 가진 나라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앙코르와트도 힌두사원입니다. 그래서 모든 사물에 신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나라입니다.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혹은 예수님)에 대해 설명하면 그들은 “여러 신들 중에서 외국인, 특히 서양 사람이 믿는 하나님 혹은 예수라는 또 다른 신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만 보면 ‘외국 사람은 자신들보다 잘사는 것 같으니, 아… 예수라는 신이 파워풀(powerful)한가보다. 나도 예수 믿으면 저렇게 잘살 수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예수를 믿기 시작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에게 유익이 없고 기대한 파워풀한 능력(?)을 경험하지 못하면 미련 없이 떠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선배 선교사들은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해 가르치는 것이 어렵고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믿겠다고 작정하는 사람은 많아도 성장이 느린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젊은 학생들의 마음가짐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진로(직업)에 대한 고민, 이성 교제에 대한 고민, 학업에 대한 고민 등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예수가 유익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미련 없이 떠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당신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희망과 믿음의 싹을 주십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작은 희망을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제가 만나는 제자들 중에 올해 첫 졸업생이 나왔습니다. 그중에 쎄라이왓이라는 친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쎄라이왓은 대학에 들어와서 CCC를 통해 전도를 받고 하나님을 믿게 된 학생입니다. 아버지가 지방의 고위 관료여서 프놈펜으로 유학을 올 수 있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이야기하던 중 하나님을 위한 일을 하고 싶다고 나누곤 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인도하실지 기대하던 중 그는 ‘Ship of Life’라는 배를 타게 됐다고 합니다. 이 배는 미국인이 만든 배로 메콩강을 따라 캄보디아와 베트남에 주로 다니면서 의료 사역을 하며 복음을 전하는 배인데, 거기서 치과 의사로 6개월간 일하기로 했다고 합니다. 상대적으로 다른 친구들에 비해 적은 보수를 받고 치과 의사로 복음을 전하는 자비량 선교사로 일을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쎄라이왓이 출국 이틀 전 우리 가족과 식사를 나누며 한 말입니다. 그는 우리 부부에게 “록꾸루(선생님), 나는 하나님을 위해 가난한 사람을 의료로 돕고 복음을 전하는 록꾸루처럼 미셔너리(missionary·선교사)가 되고 싶은데 지금은 당장 그 일을 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배를 선택한 것은 의료와 복음으로 6개월의 짧은 시간이나마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6개월간 배를 타는 것도 믿지 않는 부모님의 반대로 쉽지는 않았지만 하나님이 도우셔서 잘 설득하여 이 배를 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저는 그에게 “배에서 사는 것이 쉽지 않다. 배를 타면 밤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으니 외롭고 힘들 것인데 어떻게 이겨내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시간을 더 많이 가지겠습니다. 말씀 보고 기도하고, 주님과 친밀히 주님과 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나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좀 더 잘 알고 순종하기를 소망합니다”라고 대답하더군요. 캄보디아를 향한 하나님의 일하심을 쎄라이왓을 통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이 아이의 삶을 잘 인도하시길 기도합니다.
또 다른 제자 마까라도 대학에 들어와 CCC를 통해 예수님을 믿게 된 학생입니다. 그는 지난해 한 학년을 유급하고 말았습니다. 마까라에게도 힘든 일이었지만 저는 좀 충격이었습니다. 공부를 비교적 잘하던 학생인데 혹시라도 CCC 임원 활동 때문에 공부를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걱정됐습니다. 그래서 이 아이와 이야기를 좀 나누었습니다.
마까라는 먼저 공부를 좀 더 열심히 하지 않은 것에 대해 반성을 많이 했습니다. 그는 “부끄럽기도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 같아 하나님께도, 모두에게도 죄송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덧붙이는 말이 “룩꾸루, 많은 친구들이 유급의 위기를 뒷돈을 주고 피해갑니다. 시험에서도 부정행위가 만연합니다. 이것이 지금 캄보디아 대학생들의 현실입니다. 지금이라도 뒷돈을 주고라도 진급을 하라고 많은 친구들이 말합니다. 그중에는 크리스천이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부정한 방법으로 내 유익을 취할 수 없습니다. 록꾸루 죄송하지만 열심히 공부해서 정당하게 진급하겠습니다”였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학생들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런 작은 변화들이 모여 하나님의 때에 이 땅 캄보디아에 부흥을 주시리라 기대해 봅니다. 하나님의 때에 성령의 강하고 급한 바람이 불어서 이 땅의 죄악들을 불태워 없애시고, 모든 캄보디아 사람들이 예수의 이름을 부르며 찬양과 예배를 드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가득한 캄보디아의 모습을 삶의 작은 변화를 경험하는 젊은 학생들 한사람 한사람의 모습 속에서 기대해 봅니다.
김현태 CCC 의대 담당 간사·헤브론 선교 병원 외과 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