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난민지위 얻은 DR콩고 王族 욤비 토나씨 “밥 먹여주기보다 밥 짓는 법 가르쳐야 자립”

입력 2013-02-25 21:19


“한국에 체류하는 난민이나 난민신청자의 99%는 저보다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저에겐 도와 줄 친구들이라도 있거든요. 피치 못할 이유로 조국을 떠나온 난민들을 위해 한국교회가 따뜻한 손길을 내밀어줬으면 좋겠습니다”

2002년 콩고민주공화국(DR콩고)에서 대한민국으로 피난와 난민으로 살고 있는 욤비 토나(46)씨는 한국교회가 6000여명에 달하는 난민 및 난민신청자들에 대해 더 많은 관심과 지원을 보내주길 부탁했다.

지금은 인천에 살고 있는 토나씨는 조국에서는 작은 왕국의 왕족이었다. 부친이 인구 10만명의 부족국가 키토나 왕국의 왕이었다. 왕위는 7살 많은 친형이 이어받았고 토나씨는 국립 킨샤사대학교를 졸업하고 국가정보기관에서 엘리트 공무원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그가 속한 팀 전체가 반국가 행위를 한 것으로 지목돼 구금됐다 가까스로 탈출해 망명길에 올랐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토나씨의 아내와 3명의 자녀도 정글로 도망가 4년을 숨어 살았다.

토나씨의 첫 망명지는 아시아의 다른 나라였다. 하지만 DR콩고와 외교적으로 가까운 나라여서 무작정 비행기를 타고 떠나 도착한 곳이 한국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난민 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제지공장 사료공장 개사육농장 등을 전전했다.

행정소송 끝에 2008년 2월 난민으로 인정받았지만 법적 지위만 달라졌을 뿐 삶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그 해 6월 지인들의 도움으로 가족을 한국에 데려오는 데 성공했지만 9.9㎡(3평) 남짓한 방에서 다섯 식구가 함께 생활해야 했다. 한국GM과 이웃 교회들의 도움으로 1000만원의 보증금을 마련, 조금 더 큰 셋방으로 옮길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보증금을 떼일 위기에 놓였다.

어릴 때부터 개신교회에 출석했던 토나씨에게 신앙은 험난한 한국 생활을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었다. 불법체류자 시절 ‘깜둥이’로 불리며 갖은 설움을 당했을 때도 기도를 통해 평안을 찾을 수 있었다. 또 한국교회와 기독난민 NGO ‘피난처’ 등도 난민 지위를 인정받을 때까지 많은 도움을 줬다.

그는 “2004년 피난처의 이호택 대표를 만난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며 “피난처가 아니었다면 난민 신청이나 통역 문제 등을 혼자 해결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토나씨의 딱한 사연을 접한 교회들도 생활비 지원 등으로 도왔다. 정신적으로도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 아내 넬리 구탈라(35)씨가 한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힘들어할 때 이웃 교회의 목회자 사모와 교인들이 찾아와 함께 기도하며 위로해줬다.

토나씨는 세계 2위의 선교대국으로 성장한 한국교회가 대부분 지식인 출신인 난민들을 위해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기를 부탁했다.

그는 “밥을 먹여주는 것보다 밥 짓는 법을 가르쳐주는 게 난민들이 자립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서 “전문기술훈련이나 직업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면 난민들이 조국에 돌아가서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