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가구 15% 빚내 빚 돌려막아… 31%는 “생활비用”

입력 2013-02-25 22:39


주저앉은 집값과 줄어든 월급봉투를 바라볼 때마다 30대 금융서민 ‘하푸어’씨는 한숨을 쉰다. 그에게 지난해는 악몽과 같았다.

집을 사고파는 ‘집테크’로 다른 이들이 떼돈을 버는 것을 목격한 하씨는 2007년 2억원을 대출받아 5억원을 주고 수도권 신도시 아파트를 샀다. 매달 100만원 정도가 이자로 나갔지만 투자비로 여겼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떨어지기 시작한 집값에는 ‘브레이크’가 없었다.

지난해 집값은 3억원 수준으로까지 떨어졌다. 여기에다 경기침체 때문에 임금은 동결됐다. 아이 교육비를 비롯해 생활비는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하씨는 은행에서 기존 대출을 갚기 위한 돈을 빌리려 했지만 떨어진 신용등급 때문에 절반 정도만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새마을금고와 저축은행을 찾아 나머지를 채웠다. 고리의 빚을 짊어지게 됐지만 하씨는 ‘경제위기만 잘 넘기면 4∼5년 뒤 집값이 다시 오를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하씨의 이야기는 한국은행이 25일 발표한 ‘2012년 가계금융·복지조사(부가조사)’에 따라 하우스푸어들이 겪는 현실을 재구성한 것이다. 그동안 하반기에만 부가조사를 실시했던 한은은 2119개 표본가구를 대상으로 지난해 처음 1∼11월 사이 연간 조사를 벌였다.

조사 가구 중 금융기관 대출 보유가구는 전체의 57.1%였다. 대출 목적은 거주 주택마련이 34.3%, 생활자금 25.4% 등이었다.

금융기관 대출 보유가구 대부분은 빚 때문에 생활비가 부족해 다시 돈을 빌렸다. 31.4%가 대출 목적을 생활자금이라고 밝혔다. 기존 대출금 상환용이라는 응답도 15.2%나 됐다. 빚을 빚으로 갚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다.

다시 빚을 지려고 해도 필요한 만큼 돈을 빌리지 못하는 경우도 속출했다. 은행에 신규대출을 신청한 가구 가운데 23.0%는 일부만 대출받았고 2.4%는 아예 대출을 거부당했다. 부족자금은 제2금융권(45.4%), 지인 등(25.5%)에게서 빌렸고 29.1%는 대출을 포기했다. 은행 대출이 거부된 이유는 낮은 소득수준(35.7%), 담보 부족(33.7%), 신용상태(17.3%) 등 순이었다.

이처럼 빚더미에 시달리면서도 집을 팔겠다는 응답은 낮았다. 가계부채 상환 대책으로는 ‘소득’이 68.3%로 가장 많았다. 부동산·기타자산 처분(12.5%), 주거변경(7.0%) 등 부동산을 활용해 빚을 갚겠다고 응답한 가구는 20%도 안됐다.

부동산 경기가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지만 이들 하우스푸어의 부동산 전망은 낙관적이었다. 5년 후 부동산 가격에 대해 상승 전망이 38.1%로 가장 많았고 현 수준 유지(35.7%), 하락 전망(26.2%) 순으로 나타났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