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 딛고 대학생된 희귀 신경근육질환자들 “호흡재활치료 덕분에 제2의 호킹 꿈꿔요”
입력 2013-02-25 16:54
“역경을 딛고 새내기 대학생으로, 그리고 각자가 당당히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우뚝 서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또한 자랑스럽습니다. 여러분의 뜨거운 재활의지와 뼈를 깎는 노력에 큰 박수를 보냅니다.”
지난 21일 오후 연세의료원 강남세브란스병원 강당 앞 로비. 이 병원 호흡재활센터 강성웅 소장(재활의학과 교수)은 루게릭병, 척수성 근위축증, 척수손상 등을 겪고 있는 10여명의 희귀 신경근육질환자들을 아낌없이 격려해주고 있었다.
지속적으로 호흡재활치료를 받아야 하는 투병생활과 학업을 병행해야 하는 이중고 속에서도 정진에 정진을 거듭, 또 다시 대학생활에 도전하는 희귀 신경근육질환자들을 축하하는 자리였다. 비록 화려한 꽃 장식 하나 없는 조촐한 행사였지만 자리를 같이 한 환자들과 가족, 의료진, 그리고 후원자들의 얼굴에는 미래에 대한 희망의 빛과 기쁜 표정이 가득했다.
주인공들은 진행성 근이영양증으로 혼자선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고은준(18)군, 척수성 근위축증과 싸우는 곽희진(18) 김다옥(18)양, 선천성 근육병증 환자 권태훈(18)군, 듀센형 근이영양증으로 투병 중인 성민준(18)군 등. 지체장애 1급 환자인 이들은 희귀 신경근육질환으로 몸을 움직이기는커녕 호흡근육이 50% 이상 마비돼 숨쉬기도 힘든 가운데 연세대, 중앙대, 전남대 등에 당당히 진학했다.
연세대 컴퓨터공학과에 진학한 고은준군은 오랜 투병생활로 온몸이 굳어 손과 팔만 간신히 쓸 수 있을 뿐 휠체어와 가족의 도움 없인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처지다. 고군은 현재 자신과 같이 몸을 쓰지 못하는 장애우들을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싶다는 꿈을 키워가고 있다.
전남대 시각디자인학과에 입학하는 곽희진양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러스트가 되는 게 꿈이다. 곽양은 장차 자신과 같이 혼자선 활동할 수 없는 사람들이 디자인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전자책을 만들어 보급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쓰기를 좋아해 투병생활 중에도 소설가의 꿈을 키워 온 문학도 김다옥양은 연세대 원주캠퍼스 국문학과에, 평소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갖고 보다 체계적인 공부를 해보고 싶어 했던 권태훈군은 중앙대 역사학과에, 고은준군처럼 장애우들이 사용하기 편리한 컴퓨터 프로그램 제작을 꿈꿔온 성민준군은 대덕대 컴퓨터공학과에 각각 진학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이 역경을 이겨내는데 도움이 된 것은 호흡재활치료다. 이는 호흡 근육을 강화시키는 훈련이다. 기침 운동, 횡격막 호흡법(복식호흡), 흉식 호흡으로 폐활량을 증가시켜 인공호흡기에 의존하는 호흡을 줄이는 것이다.
이날 축하 행사에는 이들보다 먼저 대학에 진학해 우리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 우뚝 서는데 성공한 척수성 근위축증 환자 신형진(29·연세대 소프트웨어응용연구소 연구원)씨 등의 선배 환우들도 다수 참석, 이들의 새 출발을 격려하는 동시에 동병상련의 애환을 나눴다.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란 별명을 갖고 있는 신씨는 우리나라 신경근육질환자들의 멘토 같은 존재다. 생후 12개월 때 척수신경 손상으로 주변 도움을 받지 않고는 일체의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척수성 근위축증 진단을 받았으나 어머니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로 초중고교를 거쳐 연세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 9년 만에 졸업한 인물이다. 이렇듯 정상인도 이수하기 힘든 학업과정을 마친 신씨는 현재 모교 대학원에서 다시 컴퓨터공학 석·박사 통합학위과정을 밟고 있다.
신씨는 이날도 어린 시절 장애로 받았던 고통과 호흡재활센터 강성웅 소장을 만나면서 갖게 된 희망을 전했다. 그리고 장애우용 컴퓨터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100% ‘안구 마우스’만으로 발표해 큰 감동을 주었다.
강 소장은 “인공호흡기의 도움을 받지 않곤 생명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던 환자들이 재활치료 후 스스로 호흡을 하며 외출도 할 수 있게 됐을 뿐 아니라 열심히 공부해 대학교에 진학하고, 직장까지 갖게 되는 기적이 이어지고 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