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2부)] 김 총리의 제언 “노동의 신성함 중시하는 獨사회분위기 배워야”

입력 2013-02-24 23:04


김 총리는 독일 사회에서 배워야 할 점으로 노동의 신성함을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우선 꼽았다. 또 소명의식을 갖고 있는 사회 구성원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이 선거에 불리하더라도 정파보다는 국가를 위해 대타협하는 사례 등을 들며 우리 정치가 참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몇몇 외부 강연에서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언급해 노동의 신성함, 소명의식을 얘기한 적이 있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볼 때, 준법정신이 약하고 정직성도 좀 부족하다. 그리고 폭력성이 조금 심하고 낙태라든지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도 있다. 또 하나, 육체노동을 천시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본다. 노동을 신성하게 여기지 않는 사회는 발전할 수 없다. 육체노동이든 정신노동이든 하나님이 준 사명이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은 없다는 생각을 가져야 사회가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다. 서구가 비교적 합리적으로 발전한 데에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자신이 하는 일에 소명의식을 갖는 게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가리지 않는 그런 문화가 필요하다고 본다.”

-일반적으로 독일 사회에서 우리가 배울 점이 있다면.

“근검절약하고 성실하고, 노동도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하는 이런 점들에서는 솔직히 독일 사회가 낫다는 생각이다.”

-소명의식이라는 게 기독교적 윤리와 연관된 건데 그런 걸 확산시킬 수 있는 방안이 있을까.

“서양 경우엔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사회가 형성됐다. 기독교인들이 자신이 구원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 불안하니까 스스로 구원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게 됐다. 그래서 일을 열심히 해서 이웃과 사회에 도움이 된다면 그건 하나님이 구원하기로 예정했던 증표가 아니겠느냐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하더라. 열심히 일해 자본주의적 방식으로 돈을 많이 벌게 되고, 그것을 이웃과 사회를 위해 잘 쓰는 문화가 형성되면서 자본주의와 기독교 정신이 결합해서 사회를 건강하고 건전하게 만들어가는 토대를 만든 게 아니냐고 이해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도 그런 건강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노력이 잘 전파됐으면 좋겠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전 총리의 ‘어젠다 2010’ 정책을 자주 언급했었다. 우리 사회에서 ‘어젠다 2010’ 같은 정책 운영이 가능한가(어젠다 2010은 진보적인 슈뢰더 정권이 2003년 발표한 고용 연금 의료 세제 교육 등에 대한 개혁 패키지로 보수 진영의 주장을 대폭 받아들인 정책이다).

“슈뢰더가 주도한 ‘어젠다 2010’은 정말 굉장히 감동스러웠던 프로젝트였다. 그가 방한했을 때 제 방에서 함께 얘기 나누기도 했는데, 국가지도자가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떠나 국가 장래와 국리민복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한 것이냐를 보여준 훌륭한 모델이었다고 생각한다.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고용 유연성을 확보하고 복지를 축소 조정하는 정책이었고, 자신의 정치적 지지층의 뜻을 거스르는 조치였다. 그럼에도 용기있게 실천했던 사례다. 우리 정부나 정치인들도 깊이 참고하고 배워야 될 내용이다. (이 정책으로) 슈뢰더는 선거에서 져 정권을 넘겨주게 되지만, 그 정책은 보수적인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계속 승계해서 오늘날의 경제 강국이 됐다. 이런 과정에서 총리직은 상대방으로 넘어가지만 정책은 승계하는 대타협의 모습은 정말 아름답고 감동적인 모습이었다.”

-우리 사회의 복지 시스템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국민일보가 연초부터 시작한 ‘독일을 넘어 미래 한국으로’ 기획시리즈를 아주 재미있게 읽고 있다. 나도 독일이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아 참고하고 배울 만한 나라라고 생각한다. 복지는 자칫 잘못하면 낭비적인 복지가 될 수 있다. 복지정책을 통해서 능력 없는 취약계층은 확실히 보호하고,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일자리를 연결해주는 시스템이 돼야 한다. 또 중요한 점은 복지가 국민들을 나태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재정건전성을 유지해 가면서 성장에 도움 되는 복지가 되도록 시스템 관리를 아주 잘 해야 한다. 그래야 복지가 성장에도 도움이 되고 사회통합에도 도움이 된다.”

-우리 사회의 계층갈등 이념갈등이 심한데.

“이념적으로, 지역적으로, 세대 간에 많은 대립 갈등이 있는데 서로 머리를 맞대고 그런 문제에 대해서 진지하게 소통하고 화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합심 협력해야 사회통합도 이뤄지고 국가 발전도 되기 때문에 정치권이나 사회지도층이 진영논리를 떠나서 대화하고 역지사지하면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OECD 가입 이후 우리가 중진국 함정에 빠져 있다는 평가들이 나온다.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워낙 압축 성장이 진행되다 보니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든지, 불법 편법도 있었다. 과당 경쟁과 성과주의도 팽배해졌다. 이런 문제들이 개선되지 않으면 선진국 대열로 들어가기 쉽지 않다. 극복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게 법과 원칙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법과 원칙과 상식을 바탕으로 국정이 운영되고 사회가 작동할 때 비로소 선진국 대열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소외되고 탈락하는 사람에게는 복지 차원에서 새롭게 재기할 수 있는 사회적 틀을 만들어줘야 한다.”

-독일과의 인연은.

“법률가였으니까. 우리 법률이 일본법을 받아들였는데 일본법은 상당 부분 독일법을 계수(繼受)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 법의 연원이 독일법과 닿아 있다. 독일법을 공부할 필요가 있어서 독일에서 공부했던 것이다. 공부하면서 독일 사회가 합리적이고 모범적으로 움직이는 걸 보고 우리가 배울 점이 많은 나라라고 생각을 했다.”

-퇴임 후 독일로 공부하러 간다던데.

“지금 독일 사회의 변화된 모습을 보고 싶다는 욕구가 있어 그런 쪽으로 생각은 갖고 있다. 그런데 국민일보가 쁁년 동안 기사 내보낸다니 제가 갈 필요가 없는 게 아닌가 싶다.”(웃음)

정리=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