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을 넘어 미래한국으로 (2부)] 김황식 총리 “국민 섬기는 공직, 현장 중심 창의적 사고 필요”
입력 2013-02-24 18:23
김황식 총리의 연설이나 외부 강연, 인터뷰 내용을 살펴보면 자주 쓰는 표현들이 있다. 공정 사회, 정직성, 법과 원칙, 소통, 소명의식 같은 단어들이다. 그가 총리로 2년5개월 동안 국정을 운영하면서, 나아가 공직생활 40년을 지내면서 자신이 지향하는 바를 나타낸 것이다. 바꿔 말하면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부족한 것들을 지적한 것이고, 동시에 한국 사회가 변화해야 할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독일에서 공부한 적이 있는 김 총리는 여러 강연이나 글에서 독일 사회를 자주 언급한다. 독일 사회나 지도층에 자연스럽게 배어 있는 윤리의식이나 건강한 정치 리더십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 바탕에는 기독교적 소명의식이 깔려 있다고 분석한다.
김 총리는 총리로서 사실상 마지막으로 일하는 날인 지난 22일 국민일보와 마지막 언론 인터뷰를 가졌다. 상당히 편안한 모습이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공직자의 자세와 소명의식, 우리가 독일 사회에서 벤치마킹해야 할 요소 등을 진솔하게 털어놓았다. 우리 사회가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고쳐야 할 점이 많다는 뜻으로 들렸다. 특히 정치권과 정치인이 바뀌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오는 4월쯤 독일의 한 대학으로 가 한국사회 발전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를 공부하며 재충전의 기회를 가질 예정이다. 인터뷰는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1시간 넘게 진행됐다. 그날 새벽 내린 눈은 40년 공직생활을 깔끔하게 마무리한 김 총리를 축하해주는 듯했다.
만난 사람=김명호 부국장
김 총리는 특히 공직자의 덕목이나 자세를 얘기할 때 힘주어 말했다. 공직은 단순한 일자리가 아니라 천직(天職)이며 소명의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필요한 시점이라고도 했다. 정치권에 대해서는 참으로 할 말이 많은 듯했다. 떠나는 총리가 새 내각과 공직자들에게 보내는 충언(忠言)이었다.
-재임 중 가장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과 ‘시간이 있었으면 좀 더 잘 마무리 했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일이 있다면.
“학교폭력이나 불법사금융, 재난대책 같은 국민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안들에 대해 각 부처를 조정하면서 열심히 해온 것이 뿌듯하다. 공정한 사회 만들기 80대 과제를 만들고, 건강한 사회 만들기 12대 과제를 선정해 그런 문제들을 계속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는 게 보람 있었다. 효율적인 복지정책을 위해 복지 관련 전산망을 정비하고 복지 공무원을 증원시켰던 것도 기억에 남는다. 아쉬웠던 일은 재정분담이든 업무든 간에 국가와 지방 간의 역할 문제를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정비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결론을 내리지 못한 것이다. 차기 정부에서 관심 갖고 챙겨줬으면 좋겠다.”
-정치권과 정치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것 같다.
“대부분 정치인이 애국을 바탕으로 열심히 하는 것을 알지만, 가끔 정파 이해나 진영논리에 매몰되는 경우가 있다. 그렇게 되면 사실을 왜곡하거나 침소봉대해 사회갈등을 부추기고 오히려 문제해결에 장애가 된다. 정치권에서 사회현상을 객관적으로 보고 그것을 토대로 문제해결을 도출하고 국정도 평가해줬으면 좋겠다.”
-지난해 초 페이스북에 ‘정말 속상하고 욱하고 싶은 일이 있었지만 참았다. 제가 욱하면 국민이 불안해진다’는 글을 올렸었다. 정치와 관련된 일인가.
“그렇다. 국익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행태가 보였지만 제가 욱하면서 거칠게 대응하면 총리까지 갈등의 한 축으로 끼어들게 돼 국민들이 더 불안하게 느낄 것 같다고 생각했다는 취지다.”
-공정사회를 많이 언급했다. 국정을 총괄하면서 한국 사회가 변화해야 할 방향을 개념화한다면.
“법과 원칙이 바로서야 하고 소통과 화합, 나눔과 배려가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공정한 사회,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나름 노력해왔지만 정부 노력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다. 정부가 일단 시작을 했으니 앞으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 진행될 것이라 기대한다.”
-결국 한국 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와도 관련된 문제인 것 같다.
“양극화 현상과 상대적 박탈감 등이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인데, 이것이 해결돼야 한다.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게 가진 자가 나눔과 배려의 정신을 갖고 적극적인 노력을 하는 것이다. 그런 노력 없이는 어려운 이들의 마음을 얻을 수 없고 그런 사회에서는 국가 정책이 효과를 보기 어렵다. 지금이야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이 다시 부각되고, 예전처럼 도덕 재무장운동이 다시 행해져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싶다.”
-공직자의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가.
“공직은 기본적으로 국민을 섬기는 자리라는 인식을 확실히 해야 한다. 단순한 일자리가 아니라는 소명의식을 가졌으면 좋겠다. 공직은 천직(天職)이라는 자세가 필요하다. 영어로 콜링(Calling), 독일어로 베르프(Beruf)라고 하는데, 구체적으로 국민 속에 파고들어 현장 중심으로 문제를 인식해야 한다. 기존 관행에 끌려가지 말고 창의적인 생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리고 때를 놓치지 않고 즉시 해결할 수 있는 즉시성도 필요하다.”
-총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공직자에게 필요한 덕목에다 큰 사명감을 가져야 된다. 실질적인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정부가 신뢰를 얻을 수 있도록 겸손하고 성실한 자세가 중요하다. 통합을 위해선 소통의 노력이 절대 필요하다. 소통을 위해서는 많이 듣고 이해하고, 국민들이 잘못 알고 오해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선 잘 설명할 수 있는 끈질긴 노력도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 아직 지역갈등이 남아 있다.
“예산이나 인사 등에서 차별받았다, 홀대받았다는 느낌을 갖지 않도록 잘 배려해야 한다. 정치권에서도 지역정서를 이용하거나 선동을 통해 정치적 이익을 얻으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선거제도를 좀 개편해서 호남에서 새누리당 의원이 나오고 영남에서도 민주당 의원이 나올 수 있는 시스템을 정치권에서 만들면 좋겠다. 석패율제나 중선거구제, 지역성을 가미한 정당명부제 등에 대한 연구는 돼 있다. 결국 선택의 문제인데 정치권 이해와 관련된 문제여서 어렵지만, 맘먹기 따라서는 쉽게 해결할 수도 있다.”
-해결하려면 정치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힘을 보태야 하는 것 아닌가.
“솔직히 정치할 생각 없고 성품상 정치할 스타일도 아니다. 하지만 직접 정치를 하지 않더라도 그런 일에 도움이 되는 역할이 있다고 하면 마다하지 않겠다. 그런 노력은 밖에서도 할 수 있다.”
-처음에 ‘대독총리’ 시각이 있었는데 완전히 불식시키셨다.
“한마디로 운이 좋았다. 하나님이 어려움을 피하게 해주시고 지혜를 주셔서 고맙게 생각한다. 좋은 평가가 나올수록 겸손해야 한다.”
정리=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