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김용우] 교황 사임을 보는 시각

입력 2013-02-24 17:51


지난 12일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사임 발표는 많은 사람들에게 청천벽력처럼 다가왔다. 갑작스러운 사임 발표이자 로마 가톨릭 교회의 역사상 거의 600년 만에 처음 벌어진 사태인 만큼 그 배경에 대한 추측도 무성하다. 교황이 종신직임은 가톨릭 교회의 오랜 전통이다. 전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말년에 파킨슨병으로 고통받으면서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교황직을 버리지 않았던 이유다.

한편에는 사임 이유가 교황이 스스로 밝힌 바와 다르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교황의 건강 악화를 입증해 주는 보도들이 그 예다. 그러나 사임의 속내를 건강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 찾는 보도들도 있다. 교황청 고위 관계자들 사이에서 돈을 둘러싼 부패와 권력 쟁탈전, 심지어 성직자들 사이의 동성애로 야기된 갈등이 교황의 사임을 불러왔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작년 1월부터 유명한 ‘바티리크스’ 사건들이 불거졌던 점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주장들은 그저 헛소문으로만 들리지 않는다. 각국 정부 및 기업들의 비리와 불법행위를 폭로하는 ‘위키리크스’와 바티칸의 합성어인 ‘바티리크스’는 교황청 내부에서 벌어진 돈과 권력과 성을 둘러싼 갈등을 입증하는 기밀문서가 일부 이탈리아 언론에 공개된 사건을 일컫는 말이다. 실제 이 사건으로 교황의 비서가 체포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3일 교황청은 공식 보도를 통해 이러한 추측을 일축하고 새 교황 선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음모로 규탄했다.

사임의 속내보다는 차기 교황이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한 관심도 뜨겁다. 거의 11억2000만명에 육박하는 전 세계 가톨릭 신자 가운데 아프리카와 라틴아메리카가 각각 대략 15%와 41%를 차지하는 반면 유럽 신자들의 비율이 약 25%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감안해 새 교황이 아프리카 혹은 라틴아메리카에서 나올 것이라는 기대도 있다.

사임 자체에 대한 반응은 환영일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명한 신학자인 베테딕토 16세의 전통주의적이고도 보수주의적인 노선을 지지했던 사람들에게 사임은 아쉬운 일이지만 종신직인 교황도 사임할 수 있다는 새로운 전통을 만듦으로써 가톨릭 교회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는 기대를 낳는다. 교황의 사임에 두 손 들고 환영하는 측은 역시 가톨릭 교회의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이다. 복잡다단해진 현실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기존 교리를 바꾸어야 한다는 요구에는 이혼한 신자도 성찬식에 참여할 수 있게 하고, 에이즈 예방을 위해 콘돔 사용을 허용해야 한다는 비교적 온건한 주장에서부터 가톨릭 성직자의 결혼을 허용하고 여성에게도 사제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다소 과격한 주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베네딕토 16세는 개혁에 반대했다. 아프리카로 향하던 교황 전용기 안에서 교황은 수행 기자들에게 콘돔 사용이 오히려 에이즈를 확산시킬 뿐이라고 했던 일화는 유명하다. 때로 베네딕토 16세는 갈등을 잠재우기보다 부추기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모국인 독일 방문 때 이슬람을 폄하하는 발언으로 전 세계 이슬람 신자들의 분노를 촉발했고 급기야 소말리아에서 이탈리아인 수녀가 목숨을 잃는 사건이 발생했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부정하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킨 한 주교를 비호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가톨릭 교회의 개혁을 지지하는 사람들 눈에 보수주의적인 베네딕토 16세의 사임 자체야말로 그가 교황으로서 했던 일 가운데 유일하게 개혁적인 일로 비친다. 프랑스의 유력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사임 발표 다음날 1면에 ‘교황에 뒤이어 신의 사임을!’이라는 도발적인 기사를 실었다. ‘이슬람과 마찬가지로 가톨릭 교회 역시 가면 갈수록 공적 논의에 부담을 주고 있으며 반동적인 이데올로기를 강요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보수주의자가 새로운 세상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신에게 맡겨진 임무를 버리는 데 있다는 사실은 역설적이면서도 비극적이다.

김용우호모미그란스 편집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