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장지영] 피스토리우스

입력 2013-02-24 17:50

‘의족 스프린터’로 유명한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6·남아공)가 지난 14일 여자친구를 총으로 쏜 사건이 2월 지구촌을 강타했다. 그는 여자친구를 도둑으로 오인해 우발적으로 쐈다고 주장하고 있고, 경찰은 그의 계획적인 살해였다고 맞서고 있다. 지난 22일 법원은 구속적부심 공판에서 보호용 신발을 신지 않은 채 사건 현장을 돌아다닌 경찰 수사의 허점이나 그가 해외로 도주할 가능성이 없다는 이유로 보석을 허가했다. 오는 6월부터 열리는 재판에서 과실치사인지 계획살인인지가 드러나겠지만 어느 쪽이든 그는 예전의 명성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다.

그는 2011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남아공 1600m 계주팀의 일원으로 은메달을 거머쥐며 장애인 선수로는 사상 처음 메이저 육상대회 메달을 따내는 감격을 맛봤다. 그는 지난해 런던올림픽에서도 준결승까지 진출하며 또다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타임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과거 폭력 전력이나 총기류에 대한 애착, 복잡한 이성관계 등이 드러나면서 그동안 알려진 그의 이미지는 순식간에 무너졌고, 장애를 극복한 인간승리의 표본으로 그를 좋아했던 사람들은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그동안 뛰어난 스포츠 스타 가운데 각종 사건사고에 휘말린 경우가 적지 않다. 성추문으로 최악의 시련을 맛본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 도핑과 거짓말로 재기불능 상태가 된 사이클 스타 랜스 암스트롱, 아내 살해 혐의에 따른 긴 재판 끝에 돈과 명성을 모두 잃은 미식축구 스타 O J 심슨, 라이벌 낸시 캐리건을 피습하는 것이 알려져 선수생명이 끝난 피겨 스타 토냐 하딩 등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다.

스포츠 스타는 종종 ‘영웅’으로 불리지만 어쩌면 일반인보다 훨씬 약한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상대방을 죽이지 않을 뿐 전쟁터에 가까운 승자독식의 세계에서 극심한 경쟁에 내몰려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스트레스 때문에 스포츠 스타들이 일반인보다 일탈의 유혹에 약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게다가 일찌감치 인생의 정상에 올라 세상의 관심을 받다가 이후의 삶에 대비하지 못해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한다. 물론 현역 시절 인간의 한계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은퇴 이후에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선수도 적지 않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스포츠 스타는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도 우리와 마찬가지 인간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면 배신감이 덜하지 않을까.

장지영 차장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