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발견] (7) 파란 물통
입력 2013-02-24 17:50
강사 시절에는 여러 대학을 가보는 것이 흥미로운 경험이었다. 건물들도 특색 있을 뿐 아니라 안내 사인, 심지어 출석부까지도 대학의 정체성을 보여주느라 제각각이었다. 그럼에도 통일된 것이 한 가지 있었으니 그것은 파란색 플라스틱 대형물통이었다. 매끈하고 가볍기까지 한 물빛의 플라스틱통은 불그스레한 고무물통을 밀어내고 오래전부터 사용되었다. 애초에 물을 담는 용도였으나 지금은 ‘만능용기’라고 불리면서 대학을 비롯한 아파트, 공항 등 대형 건물에서 요긴하게 사용되고 있다. 100ℓ 가까운 물을 너끈히 담고 손쉽게 내용물을 비워낼 수 있으니 이 둥그런 통만한 것이 없다.
흥미로운 점은 언제부터인가 이 통에 바퀴가 달렸다는 것이다. 십년 전에는 철판을 몇 가닥 연결해서 바퀴를 단 엉성한 받침대 위에 물통을 얹었는데 이제는 아예 플라스틱 사출로 번듯하게 제작한 받침대가 등장했다. 예상치 못한 대량생산품이 디자인된 것이다. 바퀴까지 달았으니 이제 당해낼 ‘통’이 없다. 제아무리 편리하게 디자인된 휴지통이 놓여 있다 해도 파란 물통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복도며 엘리베이터며 화장실까지 종횡무진하지만 늘 사람들 눈앞에 있기에는 부담스러운 색과 모양을 지닌 탓에 청소부의 손에 이끌려 나오기 전까지는 구석진 곳에 얌전히 있어야 한다. 바퀴가 괜히 달린 게 아니다.
김상규‘서울과학기술대 디자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