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교감… 동양적 사유… 바쁜 세상 여유를 채우다
입력 2013-02-24 17:23
화가·건축가·사진가·디자이너·아트디렉터… 만능 작가 김백선 개인전
작가에게 물었다. “동양화를 그리다 건축설계, 실내디자인, 아트디렉팅까지 총체적으로 작업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작가의 철학적인 대답. “장르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시간과 상황 속에서 교감하고 조우했던 일들이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내 삶을 표현하는 것은 모두 하나다. 작업의 기준을 들자면 ‘행복’과 ‘∼답다’가 제일 중요하다.”
서울 소격동 학고재갤러리에서 3월 17일까지 개인전을 여는 김백선(47) 작가의 작품은 한 가지 장르로 규정하기 어렵다. 홍익대에서 동양화를 공부한 그는 수묵화, 사진, 건축, 디자인, 영상 프로젝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펼치고 있다. 학고재 본관과 신관에서 대규모로 마련한 이번 전시에서는 그동안 진행해온 갖가지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장르는 달라도 그가 설계한 건물과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사진, 안개 낀 설악산의 모습을 담은 영상 등에서는 한결같이 동양적인 아름다움이 묻어난다. 전남 목포 출신인 그는 어릴 적 연말이면 집에 쌓이는 달력의 설경 등 동양화에 매료돼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에는 중앙미술대상을 받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15년 전부터는 건축 작업을 병행하고 있다.
2009년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 무형문화재를 현대적으로 디자인한 ‘서권기문자향-천년전주명품 온’, 2010년 경복궁 수라간 터에 한식문화공간을 재현한 ‘화풍-경복궁으로의 초대’ 등으로 눈길을 끌었다. 그의 작업 키워드는 ‘행복지수를 높이는 디자인’ ‘동양적 사유의 공간’ ‘전통과 현대의 접목’이다. 이런 개념이 깃든 사진 10점, 수묵화 3점, 영상 10편, 설치 3점을 만날 수 있다.
작가는 자연에 기(氣)의 흐름이 있다고 강조한다. 자연은 물리적으로 그 흐름 속에 멈추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제나 진행 중이라는 것을 본관 전시장에 설치한 설악산의 ‘안개’ 영상을 통해 보여준다. 신관에 걸린 섬진강의 ‘대나무’는 사군자 가운데 꼿꼿함을 상징하는 것과 달리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을 드러낸다. 어떤 대상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시도다. 신관 지하에 설치된 ‘집’에 사용된 재료는 허물어진 한옥에서 떨어져 나온 폐목재들이다. 작가는 이를 통해 사라진 것을 새로운 형태로 재창출할 수 있다는 순환의 가능성을 이야기한다. 건조대에 널어놓은 국수를 모티브로 한 작품 ‘국수’는 2009년 서울디자인페스티벌에 ‘코리안 다이닝’이란 주제로 초대받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당시 작품을 촬영한 영상을 선보인다.
조선시대 화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그는 좋은 작가의 요건에 대해 “진솔하게 살아야 한다”고 했다. “삶은 정치이기도 하고 문화이기도 하지요. 건축이든 디자인이든 작업을 할 때마다 순간순간의 만남에 애정을 갖고 진솔하게 접근하려고 합니다.” 전시에 맞춰 지난 20년간의 작업을 망라한 작품집을 펴냈다(02-720-1524).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