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소재 창작 뮤지컬 2편] 웃음 잃은 관객에게 폭소를… ‘살짜기 옵서예’
입력 2013-02-24 17:21
‘오페라의 유령’ ‘아이다’ 등 라이선스 뮤지컬이 대세인 한국 공연계. 주목할만한 창작 뮤지컬 두 편이 동시에 무대에 올랐다. 모두 우리 고전을 소재로 해 더 반갑다. ‘날아라, 박씨’와 ‘살짜기 옵서예’가 그 주인공이다. 우리말의 아름다움, 한국적인 선율, 전통 문화 등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날아라, 박씨’는 ‘박씨부인전’을 소재로 한 극중극 형식으로 한국 뮤지컬계의 현실을 생생하게 담았다. ‘배비장전’을 원작으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는 1966년 초연 이후 이번이 7번째 공연이다.
유채꽃이 흐드러지게 핀 들녘, 탁 트인 바다가 보이는 제주도의 풍광. 여기에서 벌어지는 떠들썩한 사랑 이야기 한 판. 어망을 둘러 멘 해녀들이 외친다. “지화자 좋다, 얼씨구 좋구나!” 엄숙함이나 진지함은 없다. 대신 짓궂은 장난과 농담으로 채워진 해학적인 무대. 객석의 남녀노소 모두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1966년에 첫 공연된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CJ토월극장 재개관작으로 무대에 올랐다. 공연 첫 주말 객석반응은 뜨거웠다. 관객의 기립박수에 배비장 역의 배우 홍광호(사진 오른쪽)는 눈물을 흘렸다. 그는 “마치 ‘오페라의 유령’ 마지막 공연 같은 분위기랄까. 창작 뮤지컬도 이렇게 사랑해주는구나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며 “마치 이 작품을 하러 태어난 것 같다”고 말했다. 주인공 애랑 역의 김선영(사진 왼쪽)도 “많은 작품을 했지만 이런 느낌은 처음이다. 우리 것이 관객과 통했다는 게 너무 기쁘고 즐겁다”고 말했다.
‘살짜기 옵서예’는 우리 고전 ‘배비장전’을 소재로 한 작품. 조선 후기, 제주도에 부임한 신임 목사(현재 도지사)는 죽은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여색을 멀리하는 배비장이 달갑지 않다. 비장은 조선시대 지방장관이 데리고 다니던 관원을 말한다. 신임 목사는 배비장의 지조와 절개를 꺾기 위해 기생 애랑에게 배비장을 유혹할 것을 명한다.
이번 ‘살짜기 옵서예’는 1996년 이후 17년만, 초연 이후 7번째 공연이다. 예전과 가장 달라진 것은 사극과 최첨단 기술의 결합이다. 이 작품이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2011 차세대 콘텐츠 동반성장 지원사업’으로 선정돼 차세대 문화기술을 무대에 도입했기 때문이다.
배경 영상은 관객이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 속에 직접 와 있는 듯한 분위기를 선사한다. 유채꽃 들판, 역동적인 폭포, 몽환적이고 신비로운 숲이 무대에 펼쳐진다.
최첨단 기술의 백미는 돌하르방. 4m 높이의 돌하르방은 방자의 노래에 맞춰 웃고 눈을 깜빡이는 ‘연기’로 이 작품의 마스코트가 됐다. 입체감 있는 물체에 영상을 자연스럽게 입히는 3D맵핑 기술로 만들어진 것이다. 배비장의 죽은 아내가 등장하는 장면에는 홀로그램도 나온다. 이런 기법을 구현하기 위해 극장에는 HD DLP 프로젝터 9대가 설치됐다.
대체로 신명나는 무대다. 다만 양반의 위선을 신랄하게 풍자한 원작이 배비장과 애랑의 사랑 이야기에 집중되면서 특유의 골계미가 빠지고 익살만이 부각된 점은 아쉽다. 배비장 역에는 노래 잘하기로 소문난 배우 홍광호와 드라마 ‘대풍수’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최재웅이 더블캐스팅됐다. 3월 31일까지 CJ토월극장.
한승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