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소재 창작 뮤지컬 2편] 꿈을 잊은 그대에게 위로를… ‘날아라 박씨’
입력 2013-02-24 17:20
‘오페라의 유령’ ‘아이다’ 등 라이선스 뮤지컬이 대세인 한국 공연계. 주목할만한 창작 뮤지컬 두 편이 동시에 무대에 올랐다. 모두 우리 고전을 소재로 해 더 반갑다. ‘날아라, 박씨’와 ‘살짜기 옵서예’가 그 주인공이다. 우리말의 아름다움, 한국적인 선율, 전통 문화 등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날아라, 박씨’는 ‘박씨부인전’을 소재로 한 극중극 형식으로 한국 뮤지컬계의 현실을 생생하게 담았다. ‘배비장전’을 원작으로 한 우리나라 최초의 뮤지컬 ‘살짜기 옵서예’는 1966년 초연 이후 이번이 7번째 공연이다.
지친 하루, 문득 흔들리는 버스 차창에 비친 무표정한 내 얼굴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내 꿈은 다 어디로 가버렸을까’라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면 창작 뮤지컬 ‘날아라, 박씨’를 권한다. 가슴 한 구석에 이루고 싶은 꿈을 잠시 접어두고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작품이다.
‘날아라, 박씨’는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이 점령하고 있는 공연계에 어렵게 무대에 오른 창작 뮤지컬이다. 1980년생 극작가 정준과 작곡가 조한나는 중고교 동창. 두 사람은 오래전부터 창작 뮤지컬을 함께 만들어보자고 약속했다. 2007년 이 작품을 처음 구상했고,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뮤지컬공모전인 창작팩토리 대본공모에 당선됐다. 2012년 서울뮤지컬페스티벌 예그린앙코르우수상으로 선정돼 지원금을 받게 됐다. 5년에 걸친 노력 끝에 정식공연을 올릴 수 있게 됐지만 제작사가 없었다. 두 사람은 ‘무엇이든 창작단 동이주락’이라는 창작 단체를 만들었다. 작품 취지에 공감한 배우와 스태프들은 재능기부에 가깝게 ‘봉사’했다.
고전소절 ‘박씨부인전’을 재해석한 ‘날아라, 박씨’는 극중극 형식의 액자구조를 띠고 있다. 하나의 뮤지컬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그 안에 담긴 제작진의 고민을 유쾌하면서도 신랄하게 담았다. 1막은 ‘날아라, 박씨’라는 뮤지컬 한 편이 만들어가는 전쟁터 같은 과정을 그렸다. 더블 캐스팅된 여자주인공은 만나기만 하면 아옹다옹, 아이돌 스타인 남자주인공은 도대체 연기가 안 된다. 드디어 본 공연 첫날, 여주인공 둘은 공연을 할 수 없는 목 상태로 나타나고 제작팀은 위기를 맞게 된다. 2막은 우여곡절 끝에 오른 ‘날아라, 박씨’의 실제 공연으로 구성돼 있다.
모든 출연진이 1인 2역 이상을 맡고 있어서 한 자리에서 두 작품을 관전하는 듯 하다. 특정 장면이나 이야기 구조를 유명 뮤지컬에서 따온 장면도 꽤 있어 이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다만 후반부에 접어들며 다소 구성이 산만한 점은 아쉽다.
공연장에서 만난 정준 작가는 “고전 ‘박씨부인전’에 새로운 날개를 달아보고 싶었다.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여성 영웅을 제시한 뜻 깊은 작품임에도 시대적 가치관과 외모지상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한계를 가진 원전을 비틀었다”고 말했다.
주인공인 뮤지컬 컴퍼니 매니저 오여주 역은 홍륜희, 엄태리가 맡았다. 홍륜희는 “이 작품을 생각하면 운전하다가도 괜히 울컥해지는 게 있다. 10년 전 데뷔해 앙상블(보조 출연 배우)부터 시작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 이 작품을 하면서 그동안 잃어버리고 있었던 것, 예전엔 정말 간절했던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3월 17일까지 서울 동숭동 PMC대학로 자유극장.
한승주 기자 sjh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