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대책 네팔 총책임자 박재면 선교사, 직업세습 천민 자녀에 ‘평등’을 가르치다
입력 2013-02-24 16:58
네팔 수도 카트만두의 도심 서쪽에서 자동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마타트리타. 네팔어로 ‘엄마의 얼굴’이란 뜻을 지닌 이곳은 1만여명이 밀집해 사는 빈민촌이다. 9개동으로 이뤄진 이 지역은 각 동에 1개의 공동수도만 있어 물이 부족하고 상하수도가 구분돼 있지 않아 아이들에게 피부병과 수인성질병이 자주 발병되는 곳이다. 마을 초입 언덕길을 올라가자 노란색 스쿨버스가 보였다. 이 지역 사람들이 자녀들을 가장 보내고 싶어하는 에버비전스쿨 버스였다. 에버비전스쿨은 2004년 NGO 기아대책과 한국국제협력단(KOICA·코이카)이 공동 건축한 사립 초·중·고등학교다. 버스에서 감색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내리며 반갑게 박재면(54) 선교사에게 “저여머시”(예수님 찬양)라고 인사했다.
네팔 기아대책 총책임자인 박 선교사는 지난 10여년 동안 카트만두 외곽지역에 있는 마타트리타, 마하데브베시, 석티콜 등 3개 마을 2000명의 아이들을 기아대책 CDP(Child Development Program)로 양육하고 있다. CDP는 1대 1 결연을 통해 저개발국가 아동을 후원(신앙·식량·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아동 결연은 한국에 있는 후원자들이 기아대책을 통해 매월 3만원씩 결연아동을 후원하는 것으로 이뤄진다.
박 선교사는 에버비전스쿨을 설립한 후 학교 중심의 지역사회개발을 시도했다. 가난해서 학교에 다니기 어려운 아이들에게 교복, 학용품, 급식 등을 제공했다. 또 가정방문을 통해 학부모와 가정문제를 상담하고 필요를 채웠다.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위생교육으로 어린이는 물론 지역주민의 건강증진을 도왔다. 또 방과후 프로그램을 통해 아동들을 정서적으로 돌보고, 어머니를 위한 야학교실로 지역사회 문맹퇴치에 기여했다. 현재 에버비전스쿨 학생 600명 중 280명이 CDP 양육을 받고 있다.
박 선교사는 “3년 전 10학년을 마치고 치르는 SLC(수능시험)에서 99%가 합격해 마을 잔치가 벌어지기도 했다”며 “어느 나라든 자녀가 공부 잘하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같다”고 말했다. “학생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고 잘 성장하니까 부모들은 매주 원하는 사람에 한해 진행되는 금요성경공부 모임에 아이들을 보내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10여명 나왔는데 요즘엔 100명 넘게 참석합니다. 이 시간에 기독교적 세계관 공부를 합니다.”
힌두사상으로 물든 네팔의 영혼들에게 ‘그리스도의 푸른 계절’이 속히 오길 기도하는 그는 교육을 통해 아이들에게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고 싶어했다. “학교의 핵심가치는 평등입니다. 물고기 잡기, 화장실 청소, 신발 수선, 시체 운반 등을 하는 불가촉천민들의 직업이 세습되는데, 이들 안에도 빌 게이츠처럼 될 잠재력 있는 아이들이 많이 있을 텐데 너무 안타까워요.”
그가 선교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된 것은 1979년 대학 1학년 때였다. 충청도 심천에서 열린 ‘CCC 여름수련회’에서 김준곤 목사님이 ‘젊은이들이여 환영을 보라’는 주제로 메시지를 선포할 때 선교사가 되기로 서원했다. 그러나 86년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금융계 회사에서 13년 동안 일하면서 그때 일은 잠시 잊었다. “그 후 네팔 단기선교를 다녀온 후 인생의 어느 한 시기를 그리스도를 위해 보내고 싶었어요. 그 시기가 인생의 황금기라면 더 좋을 것 같았고요. 아내와 기도한 끝에 99년 8월 사랑의봉사단 1호 선교사로 네팔로 파송됐습니다.” 이후 그는 기아봉사단 훈련을 받고 2002년부터 평신도선교사로 활동했고 미국 리버티 신학교를 졸업한 후 목사 안수를 받았다.
네팔 사역 중 위기의 순간도 많았다. 내전 여파로 정세가 불안했던 2004년쯤 마오이스트 청년연합은 10만 루피를 요구하며 들어주지 않으면 가족들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했다. 가난한 아이들을 위해 사용해야 할 돈을 그들에게 내줄 수 없었다. “하나님께 기도한 후 그들에게 ‘먼저 우리에 대해 잘 알아봐라. 우리는 가난한 아이들을 돕기 위해 일한다. 너희들도 결국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지 않느냐’고 했어요. 그 후 아무런 소식이 없어 직원들에게 알아보니 그들이 ‘기아대책이 그렇게 좋은 일을 하는 줄 몰랐다. 코리아 형님한테 가지 말고 여기서 일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하더군요.”
그는 지난 수년간 선교지에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던 유일한 힘은 매일 아침 스태프들과 함께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을 통해 받았던 응답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지난 시간 동안 이들에게 가르쳐준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늘 무엇인가 가르쳐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것이 선교라고 믿었어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네팔 크리스천 형제들과 함께 웅덩이에 빠져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함께 그 웅덩이에서 빠져 나와 감사를 드리는 것이 선교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들과 함께 살아가며 순간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체험하는 것이 선교라고 생각해요.”(기아대책 CDP 참여 문의: 02-2085-8298)
카트만두=글·사진 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