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카에다의 카펫·설탕 사재기는… 미국 드론 공습대피 비법이었다

입력 2013-02-23 00:28

말리 북부도시 팀북투를 한때 장악했던 알카에다 북아프리카지부(AQIM) 조직원이 프랑스군에 밀려 퇴각하기 전 마지막으로 한 일은 카펫을 왕창 사는 것이었다. 그는 합성원료로 만든 밝은 색 카펫은 거들떠보지 않고 사막풀(desert grass)로 짠 우중충한 색깔의 카펫만 눈여겨봤다. “이 카펫 25장을 두 뭉치로 묶어 차에 실어 주시오!” 카펫을 실은 차는 휑하니 사라졌다.

카펫 노점상 레이트니 키세 알드주마트는 AQIM 조직원의 모습을 이렇게 회고했다. “그렇게 많은 카펫을 한꺼번에 사는 사람은 처음 봤다니까요. 어디다 쓸 카펫인지는 설명해주지 않았어요.” 조직원들은 또 설탕 수십 포대를 사 모으곤 했다.

이들이 카펫과 설탕을 사재기한 진짜 이유는 바로 국제 테러단체 알카에다가 미군의 드론(무인공격기) 공습을 피하기 위해 마련한 지침서 때문이다. 22개 항목의 지침서는 트럭 가장자리에 나무막대를 세우고 그 위에 카펫을 둘러 가림막으로 활용하거나 설탕과 흙, 물을 섞어 제조한 ‘천연 페인트’로 차량을 칠하면 상공의 드론이 인식할 수 없다는 내용을 포함한다.

꽤 기술적인 항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러시아제 ‘스카이 그래버(위성통신자료 탐지기)’ 장치를 이용해 파동과 주파수를 탐지하면 드론의 의도와 임무를 파악할 수 있다. 둘째, 교란 장치로 주파수를 방해하라. 러시아제 ‘레이컬(Racal)’이 쓸 만하다. (중략) 다섯째, 길이 30븖 구리 극이 장착된 발전기를 사용, 전자 통신을 교란하라.

AP통신이 21일(현지시간) 단독 입수한 지침서는 팀북투의 지역 세무서에서 발견됐다. AQIM이 프랑스군에 밀려 퇴각하면서 문건을 버리고 간 것으로 추정된다.

몇 개의 지침은 구식이거나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도 있다. 나무 밑에 숨으라는 조항과 적의 오판을 유도하기 위해 인형을 활용해 ‘위장 집회’를 열라는 지침 등이다. AP는 22개 항목 가운데 적어도 1개는 알카에다 지도자였던 오사마 빈라덴이 내린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테러와의 전쟁이 지상전에서 공습 중심으로 바뀌면서 테러 조직원들이 드론을 얼마나 위협적으로 인식하는지를 이 문건이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출신으로 브루킹스연구소에서 정보 프로젝트를 지휘하는 브루스 리델은 “예멘에서 작성된 문건이 말리에서 발견된 것은 알카에다가 국경을 넘어 정보를 공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대 테러전 또한 이젠 고립된 지역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