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을 스승삼아 ‘만학의 꿈’ 이루다… 학점은행제·독학학위제 영문학 학사 받은 류의현씨

입력 2013-02-22 19:56


“어려운 공부는 없다. 다만 시간이 많이 걸릴 뿐.”

소년은 동네 물레방앗간에서 장난치다 물레에 휩쓸려 오른쪽 다리를 절단했다. 소년은 16세에 불과했지만 공부로 장애를 극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농사지으면서 동생들 뒷바라지하라는 부모님을 거스를 수는 없었다. 7남매의 장남이기도 한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동생들을 성실하게 챙겼다. 넉넉지 않은 살림이었지만 4남매도 훌륭하게 키웠다. 그러나 반세기 가까이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잊지 않았다. ‘60세가 되면 대학 공부를 하겠다.’

소년은 71세 노인이 되어서야 학사학위를 취득했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을 가졌었지만 검정고시를 거쳐 고교 졸업장을 따냈고, 독학으로 영문학 학사까지 마쳤다. 63세 때인 2005년부터 8년이 걸렸다. 지금은 영국의 문호 찰스 디킨스를 존경하는 소설가 지망생이다. 종교와 인간의 관계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소설을 쓰는 것이 목표다.

전남 광양시 봉강면에 사는 류의현씨 얘기다. 류씨는 22일 서울 화곡동 KBS스포츠월드 제1체육관에서 열린 ‘2013년 학점은행제·독학학위제 학위 수여식’에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명의의 영문학 학사학위를 받았다. 이 자리에서 그는 ‘국가평생교육진흥원장 특별상’도 받았다.

공부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몸이 불편해 농사를 지으려면 농기구에 많이 의존해야 했다. 농기구가 고장나면 고치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했다. 그는 “책 보다가 이해 안 되면 이해가 될 때까지 보면 된다. 문제는 먹고살아야 하니 농사를 안 지을 수 없었다. 기계 고치다 시간을 허비해 시험을 망치는 때가 허다했다”고 말했다. 2011년에는 농사를 짓다가 시험 접수 시기를 놓치기도 했다.

아내도 반대했다. ‘다 늙어서 무슨 공부냐’는 핀잔을 줬다. 그는 “만날 책만 들여다보고 있으니 아내도 싫었겠지”라며 웃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내는 물론 자녀들과 사위 그리고 손자·손녀들까지 든든한 후원자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손주는 학위 수여식에 꽃다발을 들고 와 할아버지에게 한아름 안겼다. 류씨는 “애들이 날 보고 배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에게 배움에 대한 열정과 신앙생활은 삶의 두 축이다. 교회는 다리를 잃은 그에게 용기를 줬다. 배움에 대한 열정은 지친 그에게 목표의식을 부여했다. 종교와 인간에 대해 성찰하는 소설을 써보고 싶은 이유다. 자신의 삶을 담아 종교와 배움, 그리고 역경을 하나의 소설로 담고 싶다. 대학원 공부를 마치면 본격적으로 펜을 잡을 계획이다.

류씨와 함께 학위를 받은 탈북 여성 김모(41)씨도 이날 학위 수여식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북한에서 오빠의 탈북으로 산골로 강제 추방됐으며, 결혼해 첫 아이를 낳은 지 6개월 만에 남편과 사별했다. 우여곡절 끝에 한국에 왔지만 막막했다. 재혼한 남편과 먼저 탈북한 오빠가 취직을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등 궁핍한 생활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배워야 살 수 있다고 생각해 닥치는 대로 자격증을 따냈다. 컴퓨터에서 회계 그리고 상담 관련 자격증을 보유하게 됐다. 결국 사회복지 전공 행정전문학사를 취득하게 됐다. 보육교사 자격증은 덤이었다. 한국에 어느 정도 정착했지만 김씨는 여전히 고향을 꿈꾼다. 그는 “통일이 되면 북한에서 고향사람들에게 봉사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