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안드레아스 돔브레트 독일 분데스방크 집행이사] “아베 엔低 ‘환율 정치화’는 잘못된 것”

입력 2013-02-22 19:05


안드레아스 돔브레트(사진·52) 독일 분데스방크(중앙은행) 집행이사는 “환율의 평가절하 정책을 통해서는 국민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면서 “기본적인 분데스방크의 입장은 환율은 시장 주도로 조절돼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돔브레트 이사는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히고 “분데스방크는 ‘통화전쟁(Curreny War)’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으며 현 상황을 보면 환율이 점점 더 정치화될 수 있다는 위험을 무시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2월 출범한 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이 무제한 양적완화로 인위적인 엔저 정책을 펴고 있는 데 대한 간접적인 비판이다.

분데스방크는 총재와 부총재, 4명의 이사로 구성돼 있다. 돔브레트 집행이사는 2010년 5월부터 재정건전성과 대외채권 통계, 국제수지, 위험요소 제어 등의 역할을 맡고 있다. 서면 인터뷰는 그가 방한한 지난 8일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세계적으로 통화전쟁이 핫이슈다. 통화량을 늘리는 것이 효과가 있나.

“분데스방크는 ‘통화전쟁’이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이 용어는 너무 전투적이며 현 상황을 불필요하게 극단화한다. 기본적인 분데스방크의 입장은 ‘환율은 시장의 주도로 스스로 조절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현 상황을 놓고 보자면 환율이 점점 더 정치화될 수 있다는 위험을 무시하기 어렵다. 지금까지 국제 통화체제는 경쟁적인 평가절하 없이 위기를 이겨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기대한다. 환율(통화) 평가절하 정책을 통해서는 국민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잘해야 겉으로 드러난 증상을 치유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상호간의 근린궁핍화정책(beggar-my-neighbour-Policy·이웃국가 거지 만들기)을 통해 모두에게 해만 끼치는 통화의 평가절하 경쟁의 악순환에 빠진다. 분데스방크와 유로존은 기본적으로 자유로운 자본 유통과 자유로운 환율 원칙을 의무로 삼는다. 이런 기본적 합의는 국제통화기금(IMF), 금융안정위원회(FSB)나 국제결제은행(BIS) 등과의 국제 협력에도 적용된다.”

-화폐전쟁의 또 다른 면은 통화 주도권(Currency Power) 경쟁이다. 유로화가 달러나 위안화를 제치고 기축통화가 될 수 있나?

“유로화는 미국 달러의 뒤를 이어 제2의 기축통화로 자리잡았다. 제2의 기축통화로서 유로의 역할은 하나의 사실이다. 다만 유로 시스템이 이를 특별히 장려하거나 억제하지는 않는다. 유로의 역할은 무엇보다 시장 프로세스의 결과를 반영하고 있으며 결국은 글로벌 투자자들이 유로화에 보이는 신뢰의 표현이다. 사실 통화 주도권 경쟁 역시 우리가 사용하지 않는 용어다.”

-중앙은행 역할이 물가 안정에서 실업률 감소 등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의견은 어떤 것인가?

“경제이론과 경제사는 안정적 물가의 장점과 반대로 높은 인플레이션 및 인플레이션 상승의 위험을 명백히 보여주고 있다. 안정적 통화는 너무나 중요한 경제적, 그리고 상당한 사회적 기능을 충족한다. 안정적 통화는 특히 인플레이션을 통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산 잠식을 당하는 ‘소액 예금자’를 보호해준다. 요약하면 안정적 통화는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 따라서 통화 안정성은 안정적 경제발전, 그리고 공정한 소득 및 자산 분배를 위해 중앙은행이 기여할 수 있는 최상의 수단이다. 인플레이션율이 2% 미만일 때와 3%, 4% 혹은 5%일 때의 상황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반면 중앙은행을 실물경제수치, 예를 들어 실업률을 일정 수준으로 유지하게 하는 등 엄수의 의무를 지우는 것은 통화정책의 신뢰성을 해칠 위험을 안고 있다. 그 결과 인플레율 기대치가 상승할 수 있다. 특히 경제위기 시에 전략의 대대적인 수정을 고려한다면 인플레율 기대치 상승의 위험은 더욱 커진다.

-하지만 유럽중앙은행(ECB)도 유로존 위기 이후 물가상승률 억제 목표를 사실상 포기하고 무제한으로 스페인 그리스 등을 지원하고 있는데?

“통화가치를 안정적으로 유지시킨다는 유로존 중앙은행의 의무에는 어떤 의구심도 가져서는 안 된다. 이는 분데스방크의 변함없는 입장이다. 이 외에도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통화가치 보장이 유로존 공동 통화정책의 우선적인 목표가 돼야 한다고 이미 수차례 공개적으로 밝혔다. 그리고 유로존의 정관도 명명백백하게 이러한 내용을 담고 있다.

현재는 인플레이션 압박을 느낄 수 없다. 금융권의 높은 과잉 유동성은 아직까지 실물경제로 옮겨가지 않았다. 즉 높은 과잉 유동성이 아직은 통화 수요에 영향을 미치거나 이에 따라 인플레이션 효과를 유발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인플레이션 기대치 역시 계속해서 규정에 명시돼 있다. 하지만 중기적으로 경제 전망이 밝아지고 인플레이션 압박이 생긴다면 통화정책이 적시에 고삐를 죄는 것은 중요하다.”

-재정통합을 강화해 유로화의 가치를 실질적으로 통제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나?

“유로화는 유럽통화연맹(EMU)의 공동 화폐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유로화 환율은 유로존 공동 통화정책의 직간접적인 목표물이 아니다. 공동 통화정책의 목표는 무엇보다 유로존에서 가격 안정을 꾀하는 것에 있다. 환율 문제에 있어서도 통화가치 안정성에 우선권이 있으며 이는 유럽연합(EU)의 관련 협약에도 명백하게 명시돼 있다. 환율은 (기타 수많은 지표들과 마찬가지로) 유로 시스템 통화정책의 ‘두 개의 축 전략(two-pillar strategy)’의 틀에서 잠재적 인플레이션 효과와 관련해 분석할 때만 의미를 갖는다. 기본적인 분데스방크의 입장은 환율은 시장 주도로 스스로 조절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서영희 기자, 글=이제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