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흥우] 장관 이중국적 시비 부질없다

입력 2013-02-22 18:41


다문화, 이젠 귀에 익숙한 단어가 됐다. 반만년 지속된 단일민족 프레임에서 벗어나 대한민국이 세계화, 국제화 되어가고 있는 표식이다. 대다수 국민들도 거스를 수 없는 추세로 다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기용을 놓고 말들이 많다. 토종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한국계 미국인인 그는 얼마 전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 그래서 조국이 둘이다. 그에게 부정적인 이들은 그의 정체성을 의심한다. 미 해군장교로 수년간 복무한 그는 2011년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군 생활을 통해 이곳이 조국이고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뼛속까지 미국인이라고 자부했던 사람을 장관으로 기용하다니 한국인으로서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하다. “국내에 인재가 그렇게 없나”하는 자괴감도 든다. 그러나 한 발짝 물러나서 보면 꼭 그렇게 생각할 게 아니다. 당시 그는 모국의 장관이 되리라곤 꿈속에서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로 갖은 고생 끝에 천문학적 부를 쌓아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후천적 미국인으로서 그곳에서 사업하려면 그 정도 립 서비스는 해야 하지 않았을까.

고려 광종 때 인재 등용방식에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과거제를 정착시킨 쌍기(雙冀), 조선 인조 때 한발 앞선 유럽의 무기 제조와 대포 조작법을 전수해준 박연(벨테브레) 역시 귀화인이다. 이들이 있었기에 역사의 발전이 빨라질 수 있었다.

귀화인이 국회의원으로 선출되고, 공기업 사장도 되는 세상이다. 정부 고위공무원이 된 외국인도 있다. 독일에서 귀화한 이참 한국관광공사 사장은 지난해 3년 임기를 마쳤으나 공로를 인정받아 임기가 1년 연장됐다. 그 덕분인지 국내에 입국한 외국인 관광객이 지난해 처음으로 1000만명을 넘어섰다.

이달 말 한국생활을 접고 미국으로 떠나는 켄 크로퍼드 기상청 기상선진화추진단장도 임기가 연장된 경우다. 2009년 영입 당시 대통령의 두 배에 해당하는 고액 연봉을 줘가며 굳이 데려올 필요가 있느냐며 비난여론이 들끓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난은 칭찬으로 바뀌었다. 그의 부임 이후 예보 정확도가 높아졌다는 평가가 많아졌다. 우리로선 본전을 톡톡히 뽑은 셈이다. 반대의 경우가 없는 건 아니다.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카이스트 발전을 위해 2004년 영입한 로버트 러플린 전 총장은 급진적인 개혁안에 대한 내부 구성원들의 반발 등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중도하차했다. 한국적 현실을 도외시한 게 실패의 원인이다. 뒤를 이은 미국통 서남표 전 총장 역시 비슷한 이유로 2기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불명예 퇴진했다.

스포츠 분야에선 국가대표의 경기력 향상을 위해 한국계 외국인 선수의 이중국적 보유를 유도하고 있다. 태극마크를 달기 위해 원래의 국적을 포기하고 한국 국적을 취득한 선수들도 있다. 김 후보자가 이런 케이스다. 그는 미국 국적을 포기할 경우 미 세무당국에 수백억 원 이상을 세금으로 추징당할 수 있음에도 모국에 봉사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 그의 진정성을 믿고 싶다.

국민에게 울림을 주지 못한 박근혜 정부 조각 명단에서 그나마 감동적 요소를 갖고 있는 후보자는 그 하나다. 위장전입, 세금탈루, 부동산 투기, 전관예우, 병역 회피 등 온갖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한 다른 후보자와 달리 아직까지 그에게서 도덕성 문제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능력과 자질로 평가해야지 국적 문제로 시비 거는 것은 세계화에 역행하는 어리석은 행위다. 현재 700만 명에 이르는 재외동포 또한 대한민국의 소중한 인재풀이다.

이흥우 문화생활부 선임기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