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김황식 총리
입력 2013-02-22 18:29
“컬러를 찾으려면 정치적 발언을 하고, 누구와 싸움도 하고, 국민에게 근사한 말을 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나는 소나기처럼 확 내려서 쓸려 내려가는 것보다 소리 없이 내리지만 대지에 스며들어 새싹을 피우고 꽃을 피우는 이슬비처럼 일로써 승부하겠다. 컬러가 없는 것이 내 컬러다.” 김황식 총리가 취임 100일인 2011년 1월에 한 발언이다.
2010년 8월 세종시 수정안 파문으로 정운찬 총리가 사퇴한 데 이어 김태호 총리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마친 뒤 자진사퇴하자 전격 발탁된 인물이 김 총리다. 첫 전남 출신 총리였다. ‘대독 총리’ ‘의전 총리’에 그칠 거란 전망이 많았지만 그는 ‘이슬비처럼’ 일에 몰두했다. ‘우문현답(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답이 있다)’을 강조하면서 민생현장을 두루 찾았다. 중도우파도, 중도좌파도 아닌 소외계층을 보듬는 ‘중도저파(中道低派)’라고 자임한 것을 묵묵히 실천에 옮긴 것이다. 구제역 파동 등 고비가 없지 않았으나 이명박 대통령과 호흡을 맞추며 국정도 무난하게 이끌었다. 그 결과 어느 때부터인지 국민의 신망을 받는 자리에 우뚝 섰다. ‘명(名)재상’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2년 5개월 재임함으로써 1987년 대통령 직선제 이후 최장수 총리가 됐다.
‘무(無)컬러가 내 컬러’라는 발언 외에도 그는 인상적인 언행을 종종 보였다. 2011년 11월 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연평도 전사자 1주기 추모식에서 경호원이 우산을 펼쳐 들자 “됐다. 우산 치워라”며 40분간 비를 맞아가며 젊은 병사들의 희생을 추모한 모습이 대표적이다. 지난해 1월에는 정부 시무식에서 ‘차렷, 경례’하는 행사는 권위주의적인 냄새가 나니 빼라고 지시했다. 같은 해 5월 모교인 광주일고를 방문해선 “나는 놈 위에 노는 놈 있다”고 했다. 무엇이든 즐겁게 신나는 마음으로 해야 행복하다는 의미였다.
조만간 그는 자연인으로 돌아간다. 젊은 시절 유학했던 독일의 조용한 곳에 일정기간 머물며 공직생활 40년을 되돌아볼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퇴임하면 여유를 갖고 나라와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까 한다”고 했다. 정치와는 거리를 두겠다는 의사도 밝혔다. 퇴임 이후 행보도 이슬비와 같을 듯하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