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환의 해피 하우스] 예수 닮음과 결혼
입력 2013-02-22 18:02
“네가 예수님을 자유롭게 섬기고자 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독신으로 지내라. 결혼하면 시간을 많이 뺏기게 마련이지…. 그렇지만 예수님을 닮고자 한다면 결혼하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다. 결혼이란 사랑과 행복의 길이지만 자기희생이 필요하거든.”
독신과 결혼의 두 길에서 고민하는 동생에게 토마스(Gary Thomas)가 한 말이다. 독신이 ‘그리스도를 섬기기’에 편리할 수도 있겠지만, 결혼은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십자가의 길이 아닐 수 없다. 결혼이란 방학도 없고, 휴가도 없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가도록 우리를 다듬어가는 시련의 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수도원에서는 기도하기 위해 가혹하게도 새벽 3시에 일어나지만, 결혼생활은 아이가 울어대면 한밤중에도 일어나야 하는 더 가혹한 일이다. 한밤중이 아니라 온 밤을 새워야 하는 시련이 결혼생활에는 다반사처럼 나타난다.
이런 자기희생의 반복적인 상황들이 놀라운 영적 성장을 이뤄낸다. 눈에 콩깍지가 씌어 결혼식과 신혼여행이 꿈결같이 지나가고, 아이가 태어나기 시작하면서 결혼의 진정한 목적이 행복보다는 거룩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한다.
거룩은 하나님과 인간의 공유적인 속성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하신다(벧전 1:15∼16). 그러므로 결혼이란 두 사람만의 세속적인 계약(contract)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거룩한 언약(covenant)이어야 한다.
언약이란 성서에 300회 이상 언급되는 중요한 단어이다. 언약은 창세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관계를 나타낸다.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시며 성서는 언약의 책이고 크리스천은 언약의 백성이다.
언약은 히브리어 베리트로서 제물을 ‘자르다’에서 나온 단어이다. 히브리인들은 제물을 잘라 피로 맹세하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에 언약을 ‘피의 언약’이라고 하였다.
피의 언약에는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할례의 피’이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상징이다. 둘째는 ‘제물의 피’이다.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물을 잘라서 흘린 피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회개하는 상징이다. 셋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이다. 예수님이 흘리신 대속의 피로서 죄를 자백하면 용서해 주시는 가장 중요한 언약의 상징이다. 예수님이 보혈을 흘려 구속사역을 성취하셨으므로 더 이상 피 흘림이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가정사역자 그레쉬(Dannah Gresh)는 네 번째 피를 강조한다. 결혼이란 자기 자신을 죽이는 ‘희생의 피’이다. 크리스천 결혼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보다 배우자를 위하는 희생을 맹세하는 거룩한 언약이다.
언약 결혼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기 때문이다. 계약 결혼은 ‘나는 무엇을 얻게 되는가? 나의 욕구를 어떻게 충족시켜 줄 것인가?’라고 생각한다. 반면에 언약 결혼은 ‘저는 제 자신을 무조건 당신에게 헌신하겠습니다. 당신을 위해서 내가 할 일이 무엇인가요?’라고 묻는다.
계약은 서명을 요구하지만 언약은 진실한 마음을 요구한다. 계약은 유효기간에만 효력이 있지만, 언약은 죽음을 넘어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다. 우리는 흔히 독신수도원을 거룩한 공동체라고 생각하고, 가정은 세속적인 공동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말해야 옳을 것이다. “수도원은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가정은 참으로 더욱 거룩한 공동체입니다.”
<서울신학대학교 상담대학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