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철훈의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 1년의 여정… 연재를 마치며
입력 2013-02-21 20:24
2012년 2월 11일자부터 본보에 연재된 현대시 산책 ‘감각의 연금술’이 지난 15일자 50회를 끝으로 1년간의 여정을 끝내고 마침표를 찍었다. 2000년 이후 한국 현대시에서 가장 첨예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젊은 시인들의 시를 통해 우리 안에 존재하는 문화적 다원주의를 들여다본다는 게 기획 의도였다. 이 코너에 초대한 50명의 시인들이 한국 현대시의 대표성을 지니고 있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보여준 다양한 감성들은 우리 시대 언어적 전위의 표정을 어느 정도 어림하게 해 주었다.
50인의 젊고 불온한 詩心
상실에 갇힌 감성을 깨우다
나이 분포를 보면 독일에 거주하는 허수경(49) 등을 제외하고는 거의 1970∼80년대생이었다. 최연소자인 이이체 1988년생, 김승일 1987년생, 오은 1982년생이다. 그러니까 새로운 감성만을 놓고 볼 때 한국 시단은 60년대와 80년대 사이에 낀 70년대생 중심으로 급속하게 재편되고 있는 것이다.
2000년대 한국 시의 특징은 불온성(不穩性)이라는 말로 집약할 수 있을 것이다. 하위문화(Subculture)와 은폐된 균열, 무국적성의 요소들이 흘러넘치기 때문인데, 그들은 시적인 것과 서사적인 것의 경계를 허물고 제도화된 문법을 무너뜨리며 불온한 꿈을 꾸는 자이다. 그들은 얼핏 시 장르의 순결성마저 지향하지 않는 듯하다. 그렇기에 그들을 지켜보는 기성 시단의 시선은 곱지 않다. 기존 서정시의 범주를 훌쩍 넘어서는 스타일로 인해 그것을 ‘시’로 볼 수 있는가 하는 것과 ‘난해하다’는 것이 그것인데, 그들이 저항하는 것은 기성이라는 이름의 권위일지도 모른다.
이들의 언어적 역동성과 불온성으로 말미암아 ‘작품’으로서의 미학적 완결성은 부족할지 몰라도 그들의 존재 자체가 미덕이 될 수 있는 건 기성세대의 미학을 초과하는 감각의 폭주에 있을 것이다. 그들의 시가 난해하다고 말하는 것도 어쩌면 그것에서 어떤 ‘해석’과 ‘의미’를 찾아내려 하는데 기인할 것이다. 그들이 벌이는 카니발은 언어라는 기호 자체의 무한 놀이를 통해 기존의 상징 질서를 교란하는 일종의 사건이기도 하다. 그들이 ‘감각의 연금술’이라는 이름의 카니발에 우리를 초대했으니, 즐기는 자는 밤샘을 할 것이고, 즐기지 못한다 해도 스스로의 감성이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불온성은 말이 너무 많은 시대에 스스로 고립시키려는 ‘힘’이자 근원적인 질문을 계속하려는 ‘힘’으로 집약된다. 이는 시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 자체이기도 하다. 말과 문자라는 언어를 소유한 인류는 과연 누구인가. 시는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가 라는 질문들…. 그들의 감수성은 우리가 결국 알아내지 못한 것들을 알아내기 위한 몸부림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건, 어쩌면 생명 그 자체와 생년월일 둘 뿐이라는 사실에서 인간은 적어도 탄생 순간만큼은 평등했는지도 모른다. 그 둘을 쥐고 시작된 삶은 어머니의 자궁을 떠난 직후부터 분화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분화는 필연적으로 상실을 동반한다. 그런 의미에서 시인들은 언어라는 잣대를 든 상실의 측량사이기도 할 것이다. 황병승, 김이듬, 진은영, 김경주에서 강성은, 신영배, 최치언, 이제니에 이르기까지 이 코너를 방문해준 50인의 시인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한다.
생각하면 미당 서정주가 겨우 서른 중반쯤 한국전쟁 당시 임시수도 부산에서 지팡이에 중절모를 쓰고 ‘영감님’ 소리를 듣던 시절, 그때는 삼팔선을 울린 대포 소리가 대기를 질리게 한 여진만큼 시대가 압축돼 있었다. 그 압축은 21세기에 진입한 2000년에 미당이 세상을 뜨면서 풀리기 시작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진정한 21세기 신인류로서의 젊은 시인들이여, 어서 걸음을 재촉하시라.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