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주주 일방적 의사결정 견제 ‘전자투표제’ 유명무실… 경제 민주화 역주행하는 상장사
입력 2013-02-21 19:26
재벌 총수 등 대주주의 일방적 의사결정을 견제하는 전자투표제도가 유명무실하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기업 지배구조 개선 의지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이 전자투표제도를 철저히 외면하는 등 경제 민주화에 역행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21일 한국예탁결제원과 한국상장사협의회 등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전자투표제를 신청한 상장사는 단 한곳도 없다. 12월 결산법인의 주주총회는 다음 달 중순 이후에 대부분 몰려 있다.
전자투표제는 시간을 내기 어려운 소액주주가 주총에 출석할 수 없을 경우 인터넷으로 의결권을 행사하는 방식이다. 2010년 5월 도입 이후 지금까지 예탁원과 전자투표 계약을 체결한 회사는 40곳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대부분 ‘페이퍼컴퍼니’(서류상으로만 있는 회사)인 선박투자회사가 36곳이다.
기업들은 전자투표를 외면한 채 ‘섀도 보팅’(그림자 투표)을 악용하고 있다. 섀도 보팅은 주주가 주총에 불참해도 투표한 것으로 간주해 다른 주주들의 투표 비율을 적용하는 제도다. 대주주들은 소액주주들이 총회장에 나타나지 않아도 이를 통해 정족수를 맞출 수 있다. 이 경우 의사결정은 대주주 뜻대로 될 가능성이 높다.
예탁원 관계자는 “기업들이 섀도 보팅을 편하게 생각하다 보니 전자투표제가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자본시장법 개정안에는 섀도 보팅을 폐지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박 당선인의 대선 공약에 포함된 집중투표제도 활성화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 제도는 소액주주들이 주총에서 자신이 원하는 이사 후보에게 의결권을 몰아줘 재벌 총수와 기존 경영진을 견제할 수 있게 한 장치다. 기업들은 정관에 집중투표제 배제 조항을 두고 있다. 지난해 주총에서 시가총액 기준 100대 제조기업 중 집중투표제를 채택한 기업은 4곳뿐이었다.
사외이사 독립성을 높이기 위해 사외이사후보추천위원회에서 재벌 총수나 최고경영자(CEO)를 배제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지만 이 역시 업계 반응은 미지근하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