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빵 부족’ 위기… 제2혁명 불씨로
입력 2013-02-21 22:15
이집트에서 빵은 식량이기 전에 삶이며 정치다. 속이 텅 빈 중동식 빵 ‘아이쉬(Aysh)’는 실제로 아랍어로 생명 또는 삶이란 뜻을 지닌다. 20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집트 정부가 통제력을 잃으면 안 되는 것, 두 가지가 바로 빵과 연료”라고 소개했다. 이런 이집트의 빵 공급에 위험 신호가 켜지고 있다.
이집트 정부는 외환위기로 이집트 파운드화 가치가 급락함에 따라 공공 비축 밀이 6개월 분량에서 101일로 반 토막 났다고 19일 밝혔다. 세계 곡물 시장에서 밀을 확보하는 것이 무함마드 무르시 정권의 새로운 과제가 됐다. 역대 이집트 혼란의 진원(震源)인 빵 공급에 차질이 빚어짐에 따라 가뜩이나 심각한 사회 불안은 더욱 깊어질 전망이다.
바닥을 드러낸 외환 보유고도 문제다. 2011년 이집트 혁명 직전 360억 달러에 이르던 외환 보유액은 관광객 감소로 지난달 136억 달러로 떨어졌다. 밀 수입업자들도 외화가 부족한 상황이다. 외화 입금이 안 돼 장기간 인도되지 않고 항구에 묶인 곡물 화물도 곳곳에 눈에 띈다. 이집트는 정부 배급 빵을 1인당 세 덩이로 제한한다는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곡물 가격도 빠르게 치솟고 있다.
정부는 거의 무능력·무책임·무대응 수준이다. 이집트 정부는 최근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식량 인플레이션이 걷잡을 수 없다”며 “시민들에게 과식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미국 언론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19일 이런 내용을 소개하며 둔하고 멍청한 성명을 발표하는 정치인이 어느 나라에나 있지만 이집트는 그조차 기대 이상이라고 꼬집었다.
문제는 밀 부족으로 ‘사회 평화’가 깨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집트에선 사회주의에 가까운 빵 보조금 제도와 ‘국영 빵집’이 있고 40%를 넘는 빈곤층이 빵 보조금으로 생계를 유지한다. 이집트 근현대사를 보면 빵 때문에 일어난 폭동과 혁명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1977년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이 외자를 유치하려고 국제통화기금(IMF)의 주문대로 밀가루 보조금을 없애려다 전역에서 폭동이 일어났다. 분노한 시위대 800여명이 사망했고, 보조금은 유지됐다.
2008년 국제 곡물시세가 사상 최고치로 치솟자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1인당 국영 빵집 구매량을 20개로 제한했고, 성난 시민들은 거리로 뛰쳐나왔다. 빵 굽는 노동자가 파업하자 정부가 긴급조치로 군대를 동원해 아이쉬를 굽게 한 일도 있었다. 이집트 ‘아랍의 봄’은 궁극적으로 빵 때문에 터졌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다.
이집트에서 통치자는 권력을 갖는 만큼 국민에게 아이쉬만큼은 안정적으로 공급해야 하는 것이 의무이자 일종의 계약으로 통한다. 이 ‘아이쉬 약속’마저 깨진다면 무르시 대통령의 앞날도 불투명하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