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배준호] ‘현금 삐라’와 같은 기초연금

입력 2013-02-21 09:31


정치가에게 복지는 매력적이고 또 부담스러운 이슈다. 많이 주고 싶지만 재원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요즘의 우리처럼 복지이슈가 표가 된다면 좋은 시절이다. 하지만 “임금과 연금을 깎아야 구제금융으로 국가부도를 면할 수 있다”는 그리스 사라마스 총리의 호소가 머지않아 우리의 얘기가 될 수도 있다.

‘신이 발길을 멈춘 풍요’로 해석할 수 있는 복지(福祉)는 중국 전한(前漢) 시대 초연수(焦延壽)의 주역해설서인 역림(易林)에서 연원을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후 복지는 늘 멀고 빈곤은 가까웠다. 가난은 자기 책임이었고 국가도 살림이 넉넉지 않아 돌봐주지 못했다. 이 같은 흐름 속에 지금 우리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수준을 보이고 있다.

노인빈곤이 자살의 주된 이유로 거론되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기초연금 20만원’ 공약을 내걸었다. 그런데 지난 두 달여 인수위 논의가 우왕좌왕하더니 마지막에 제시된 4만∼20만원의 차등지급안에 대한 국민의 반발이 거셌고, 그 과정에서 국민연금의 신뢰도까지 손상되었다. 배경에는 삐라 뿌리듯 나눠주는 현금액의 차등화와 신제도 적용에 따른 형평성 문제가 있다.

우리는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을 위시한 5대 사회보험에 기초생활보장과 기초노령연금이라는 최후 안전망까지 갖추었지만 각 제도에 빈 구멍이 많다. 그래서 노인빈곤이 해소되지 않고 20만원 연금이 대안으로 제시되었다. 사실 위에 거론한 복지제도는 도입 시의 현실과 제약을 감안하는 과정에서 제도가 짜깁기 형태로 설계되어 영국 경제학자 베버리지(W H Beveridge·1942년)가 제시한 현대 복지의 2대 기준인 ‘최저복지수준(national minimum)’과 ‘보편적 적용’의 관점에서 결함이 지적돼 왔다.

1988년 도입된 국민연금은 당시의 노인과 조만간 노인이 될 사람의 소득보장 대책을 담지 못했고 전업주부를 적용대상에서 배제했다. 그 무렵 경제력이 약했고 신제도 발족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2008년 노인 대책으로 기초노령연금이 도입되었지만 전업주부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대책이 없다.

건강보험과 국민연금을 위시한 사회보장제도는 캐나다 미국 일본 영국 등의 관련 법제를 참고하되 우리 실정에 맞게 변형한 모자이크 복지제도다. 따라서 그간의 역사와 이행경로를 무시하고 장기보험인 국민연금을 새로 설계하는 수준으로 바꾸려 하면 국민적 저항에 부딪힐 수 있다. 기득권자의 이익과 상충하기 때문이다.

가입자 2000만명, 수급자 330만명으로 전 국민의 47%가 이해당사자인 국민연금의 경우, ‘보편적 적용’ 면에서 허점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지만 그 방식이 점진적이고 기득권 침해를 최소화하며 형평성을 갖추지 않으면 개혁 작업이 힘들 수 있다.

모든 노인에의 최저복지수준 보장과 기초노령연금-국민연금의 통합은 별개 문제다. 박 당선인이 강조한 20만원 연금은 현행 기초노령연금법의 개정만으로도 달성할 수 있다. 이때 상위 30%를 제외하고도 모든 노인이 최저복지수준을 누릴 수 있다면 보편적 적용은 고집할 필요가 없다. 의료보장 등 현물서비스와 달리 소득보장은 신축적 적용으로도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두 연금의 통합은 도입 취지는 물론 재원이 조세와 보험료로 다르다는 점에서 내년 7월의 ‘국민행복연금’ 도입으로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시간을 갖고 필요성 여부와 방법을 검토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추가 투입재원의 일부를 현금 삐라 방식 대신 수요가 많은 서비스 복지의 강화에 배분하면 수급자의 만족도를 높이면서 일자리 창출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또 강화된 서비스 복지가 수급자의 잠재능력 실현 기회의 창출로 이어지도록 하면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조기에 정착시킬 수도 있다.

배준호 한신대 대학원장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