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어느 저격수의 죽음

입력 2013-02-21 17:42

현대전에서 병사 1명이 적군 1명을 사살하는 데 평균 1만5000발의 탄환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러니 ‘일격필살(One shot, one kill)’을 신조로 하는 저격수(sniper)가 얼마나 대단한 군인인지 알 수 있다. 오죽하면 저격수 1명이 중대병력과 맞먹는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실제로 ‘위대한 저격수’들의 기록을 보면 놀랍다. 사상 최고의 저격수로 꼽히는 핀란드군의 시모 하이하.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과의 ‘겨울전쟁’에서 무려 543명을 사살했다. 비공식적인 것까지 합하면 600∼700명이나 된다. 물론 소련군에도 훌륭한 저격수는 많다. 예컨대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로 유명한 바실리 자이체프는 2차 대전에서 400명의 독일군을 해치웠다.

지금도 국적과 세력을 불문하고 저격수는 각종 전투에서 ‘혁혁한 전공’을 세우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테면 ‘바그다드의 저격수’로 불린 주바(혹은 조바). 이라크 전쟁에서 미군에게 공포의 대명사로 군림했던 그는 적어도 미군 140명을 사살했다.

저격수들의 뛰어난 ‘활약’은 대중매체의 소재로 적격이라 많은 이들이 영화 등에 등장하는 멋진 저격수의 모습에 매혹되곤 한다. 하지만 실제 저격은 무척이나 고된 일이다. 단둘(저격수는 보통 관측병 또는 감적수(spotter)와 둘이 한 조를 이룬다)이서 적진을 뚫고 침투해 적당한 곳에 은폐한 다음 목표물이 나타날 때까지 하염없이 대기해야 한다. 게다가 단순히 숨어 있는데 그치는 게 아니라 때로는 먹지도 못한 채 몇 시간, 심지어 며칠씩 꼼짝하지 않아야 한다. 엄청난 체력과 집중력, 인내력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감정에 흔들리지 않는 냉철함도 갖추고 있어야 한다. 한 기자가 저격수에게 물었다. “임무를 마친 느낌이 어땠습니까?” 사람을 죽인데 따른 고뇌? 죄책감? 천만에, 저격수의 대답은 이랬다. “(총의) 반동을 느꼈습니다.”

미군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저격수로 불려온 크리스 카일이 얼마 전 역시 미군 저격수 출신 참전용사의 총에 맞아 숨졌다. 해군 실팀의 일원으로 1999∼2009년 복무기간 중 이라크전 등에서 공식적으로 160명을 사살한 카일은 전역한 뒤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에 시달리는 참전용사들의 재활을 돕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왔으나 PTSD를 앓고 있던 전 저격수 ‘동료’에게 총으로 살해당한 것이다. 명령에 따라 임무를 수행했을 뿐인 카일이지만 그래도 그렇게 목숨을 잃다니 ‘칼 쓰는 자 칼에 망한다’던 옛말이 자꾸 떠오른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