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희성] 편안한 친구
입력 2013-02-21 18:07
일을 하면서 알게 된 한 어른과 그분의 지인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있다. 대학 동창이라는 지인분과 우연히 동석하게 된 식사자리는 주거니 받거니 술잔처럼 오고가는 두 분의 이야기에 취해 점심 영업이 끝나는 시간까지 이어졌다. 만담하듯 술술 풀어가는 이야기타래도 재밌었지만 태초부터 ‘어르신’이었을 것 같은 두 분의 엉뚱하고 귀엽게 유치한 모습을 보는 재미가 더 컸다.
칼 같은 눈매와 꾹 다문 근엄한 입가에서 씰룩씰룩 장난기가 비집고 나오니 봄볕 좋은 캠퍼스 잔디밭에 앉아 예비역 선배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있는 것 같았다. 문득 친구란 타임캡슐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든 만나기만 하면, 아니 떠올리기만 해도 인생의 봄날을 되돌려주는 타임캡슐.
부러운 모습에 시샘부리 듯 나의 타임캡슐들을 떠올려봤다. 두 분의 세월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절반 정도는 되는 20년 지기들. 나이도 학과도 다른 네 사람이 졸업반이 되던 해에 학생회의 집행부로 처음 만났다. 함께 고생한 1년이라는 시간과 그 속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인연의 씨앗이 되었고 그 후 20년 동안 서로 볼꼴 못 볼꼴 다 보여주면서 친구로 자랐다.
처음 면접에서 떨어진 날, 출근 첫날, 첫 월급 탄 날, 처음 시말서 쓴 날, 팀장이 되고 과장이 되던 날, 직장 그만두고 새 일을 시작하던 날. 기쁜 날에는 왁자하게 술잔을 나눴고 괴로운 날에는 말없이 함께 남산길을 걷기도 했다.
시간이 흘러 처음 만났을 때 나이의 곱절쯤 되고 보니 많은 것이 달라졌다. 한 친구는 중국에서 살고 있고, 한 친구는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었다. 물리적 거리의 벽과 시간적 부담으로 1년에 두세 번 만나기도 빠듯해졌다. 비교적 한가하게 사는 서울의 싱글들로서는 서운하지 않을 수 없지만 반년 만에 만나든 1년 만에 만나든 조금의 어색함 없이 자연스럽고 편안한 친구가 있다는 게 어딘가. 감히 불만을 품을 수가 없다.
오스티엄 VOL 2(잃어버린 기술 친구 만들기)에는 친구(friend)란 말의 어원이 자유(freedom)에 있으며 친구란 우리에게 쉴 만한 공간과 자유로움을 허락하는 사람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니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오가는 사람이 없는 산길은 시나브로 사라지게 된다. 친구 사이도 그렇지 않을까. 울퉁불퉁 모난 사람에게 20년을 한결같이 오가며 반듯한 길을 내어준 친구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김희성(일본어 통역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