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기수] 서남의대 사태 해법은?
입력 2013-02-20 19:05
교육과학기술부가 전북 남원시 소재 서남대학교에 의과대학 졸업생 134명의 학위 취소 처분 등 감사결과를 통보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 학점 및 의학사 학위 취소 위기에 놓인 서남의대 졸업생 및 재학생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서울행정법원에 교과부를 상대로 행정처분 취소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학교 측도 교양 및 전공과목 미(未)이수자 학위 취소 조치, 의대 임상실습 학점 취소 및 의학사 학위 취소 조치 등 3개 항목에 대해 재심의를 신청했다. 의학사 학위를 잃게 되면 이미 취득한 의사면허도 취소되기 때문이다. 의료계와 국회도 서남의대 학생들과 졸업생들의 피해를 막기 위한 정책간담회 등을 잇달아 개최했다.
여론은 크게 두 갈래로 형성돼 있다. 부실운영 책임을 물어 학교 폐쇄를 고려해야 한다는 강경 주장과, 그래도 지역사회와 죄 없는 학생들을 위해 정상화 기회를 줘야 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다. 교과부가 앞으로 어떤 답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가장 큰 피해자는 서남의대 재학생과 졸업생들이다. 이들은 “왜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하느냐”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맞다. 이들에게 허물(?)이 있다면 교과부가 방임한 부실 의대 출신이라는 것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중 90% 이상은 의사면허국가시험(국시)에 당당히 합격하고 의사가 됐다. 개천에서 용이 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의학교육인증단이 둘러본 500병상 규모 서남의대 부속 남광병원의 현실은 실로 처참했다고 한다. 2007∼2011년 5년간 평균 병상 가동률이 0.9∼3.4%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하루 평균 진료환자 수도 최저 4.6명에서 최대 17명에 그쳤다.
고려대병원 혈액종양내과 김병수 교수는 “학생들이 진료에 직접 참여할 수 없는 임상실습교육이 아무리 어깨 너머로 훔쳐보고 알아서 캐치하는 ‘방목’ 수준이라 해도 그런 상황에서는 그 무엇도 보고 배우는 게 없었을 것”이라며 “국민의 건강을 책임지는 의사가 이런 식으로 양성돼선 결코 안 된다”고 비판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교육당국의 철저한 감시와 감독이 필요하다. 그 결과 개선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되면 즉시 학생 교육권을 뺏어야 한다.
지금의 서남대가 하루아침에 개과천선해서 갑자기 의학교육을 잘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그러기엔 교수요원도, 시설도 턱없이 부족하다. 재단도 썩었다. 학교 측이 새로 내놓은 교육 정상화 방안도 실현 가능성이 적을 뿐 아니라 교육병원이 아닌, 남의 병원에 동냥하듯 기생해야 하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미 늦었지만 서남대는 지금이라도 의학교육과정의 틀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그 과정에서 애꿎은 학생들을 인질로 삼아서도 안 된다. 서남대가 학생들을 붙잡고 놔주지 않는 한 다른 대학에서 그들을 구제해주고 싶어도 도리가 없게 된다.
우리는 과거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를 통해 부실 공사의 결말이 얼마나 참혹한지 뼈저리게 경험했다. 국민의 건강을 책임질 의사를 양성하는 의학교육도 마찬가지다. 잘못된 교육은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고, 의료서비스의 기반을 취약하게 만든다.
의사가 양성되는 과정은 절차탁마(切磋琢磨), 즉 쓸모없는 원석에서 옥을 잘라 갈고 다듬어 좋은 옥을 만드는 공정과 비슷하다. 일반인이 상상하기 어려운 정도의 많은 학습량을 소화하고도 수년간의 수련기간을 거쳐야 한다. 좋은 스승과 수련 시설을 충분히 갖춘 곳에서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진해야 비로소 의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서남의대는 예비 의사들이 수학을 할 수 없는 유해 환경이다. 교육기관으로서의 면모를 제대로 갖출 때까지 학생들을 가르쳐선 안 된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임기영 의학교육인증단장의 지적이다. 누구보다 서남대와 교과부 관계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지 싶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