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지식 無… 상관 지침 無… 현지 언어도 몰라… ‘자력갱생’ 美 외교관들
입력 2013-02-20 18:41
이런 시나리오를 가정해 보자. 스물아홉 살의 식당 매니저가 어느 날 미국 외교관이 된다. 5년 뒤 그는 미국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한 중동지역 프로젝트의 책임자가 된다. 아라비아반도에 급파된 그에게 주어진 일은 독재정권에 맞서 역내 시민사회단체에 200만 달러의 자금을 은밀히 지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겐 아랍어를 전혀 모른다는 치명적 결함이 있었다. 또 식당 종업원 외에 사람을 어떻게 다룰지, 예산을 어떻게 관리할지 알 길이 없었다. 단 하루의 관련 교육 또는 훈련을 받지 못했고, 지침을 내려준 상관도 없었다. 정부가 그에게 주문한 것은 ‘동료를 따라하라. 스스로 개척하라. 일단 처리하라. 운에 맡겨라’였다.
이 상황은 2004년 아부다비에 파견됐던 미국 외교관 한스 벡슬에게 실제 일어났던 일이다. 벡슬은 몬태나 주립대를 졸업한 뒤 식당 매니저로 일하다 1999년 어려운 외교관 시험에 합격했다. 그가 5년 뒤 맡은 직책은 9·11 테러 이후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주창한 ‘중동파트너십이니셔티브(MEPI)’의 아라비아반도 사무소 책임자였다. 아라비아반도 8개 국가 내에서 적절한 비정부기구(NGO)를 선정해 거액의 활동자금을 대주는 게 임무였다.
벡슬은 “당시 워싱턴의 상관들은 나에게 애매모호한 가이드라인조차 주지 않았다”며 “상관들도 우왕좌왕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아부다비 활동에 어려움을 토로했던 외교관은 벡슬이 처음이다.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는 미국의 많은 외교관들이 벡슬처럼 제대로 된 수영법을 배우기도 전에 덜컥 깊은 물에 던져지고 있다고 20일 보도했다. ‘물에 빠지든지 헤엄치든지(sink or swim)’식의 배치가 이뤄진다는 것이다. 특히 아랍의 부상 조짐이 보이는 중요한 시기에 훈련받지 못한 외교관들을 전략지역에 배치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FP는 지적했다.
이런 사례는 사실 지난 수십년간 국무부에서 흔한 일이었다. 국무부 고위관리들은 그동안 외교관 훈련이 시간낭비일 뿐이라고 여겨왔다. 콜린 파월 전 국무장관은 이런 상황을 강도 높게 비판한 적이 있다. 그는 2005년 퇴임 전 “(2001년 부임 당시 국무부) 관료들의 리더십과 관리 능력이 결여돼 있었고, 훈련도 돼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파월 퇴임 이후 외교관 훈련이 중시되면서 미 외교연구원(FSI)의 어학, 리더십, 관리 교육프로그램이 한층 강화됐다. 그러나 현재도 대부분 기능적인 부분에 치중해 프로페셔널한 고급 외교관을 만들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이 매체는 전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