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저에 치이고… 中에 쫓기고… 한국 경제 ‘샌드위치’
입력 2013-02-19 22:25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태풍을 맞은 직장인 사이에 ‘샌드위치 증후군(Sandwich Syndrome)’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아래에서는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유능한 부하 직원에게, 위에서는 실적을 채근하는 상사에게 압박을 받던 과장·부장급 중간 관리층의 고통을 빗댄 말이다.
최근 우리나라의 경제가 샌드위치 증후군을 앓고 있다. 그간 최대 수출 대상국이었던 중국은 산업고도화 전략으로 기술 경쟁력을 높이며 세계 무역시장에서 우리의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일본은 국제사회의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엔저(円低) 정책을 고수하며 가격 경쟁력을 높여 우리 기업을 압박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와 한국무역협회는 지난해 한·중 양국의 10대 수출 품목(수출액 기준) 중 중복되는 품목이 반도체와 선박, 평판디스플레이, 무선통신기기, 전자응용기기 등 5개로 조사됐다고 19일 밝혔다. 12년 전인 2000년에는 양국의 고부가가치 수출품 중 중복 품목이 컴퓨터와 무선통신기기 등 2개에 그쳤었다.
중국과 겹치는 품목이 우리 수출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년 사이 13.1%에서 30.7%로 증가했다. 반면 중국은 이 비중이 14.9%로 우리의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양국 간의 수출 경쟁이 심화되면 우리 경제나 기업이 입는 피해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은 정부 주도로 기술 경쟁력 강화에 몰두하고 있다. 산업기술재단에 따르면 2009년 우리나라와 중국의 기술 경쟁력 평가점수 차이는 2.4점이었지만 지난해에는 절반인 1.2점으로 줄어들었다. 산업기술재단의 평가점수 2점 차이는 약 1년의 기술력 격차를 의미한다. 산업기술재단은 “우리와 중국의 기술 격차는 디스플레이 등 일부 품목만 제외하면 1∼2년 안쪽으로 따라잡힌 상태”라고 평가했다.
기술력을 키운 중국 기업들은 그동안 우리가 일궈둔 수출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지난해 중국의 수출 1위 품목은 1431개로 세계에서 가장 많았다. 반면 우리나라의 수출 1위 품목은 61개(세계 15위)에 그쳤다. 지난해 우리가 수출 1위 품목 자리를 내준 26개 중 12개는 중국의 손으로 들어가 있다. 중국이 빼앗은 12개 품목 중에는 액정디바이스, 폴리에틸렌, 스테인리스강, 석유 아스팔트 제품 등 고부가가치 산업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여기에다 우리나라가 따라잡으려 했던 일본은 대규모 양적완화, 제조업 지원 정책을 기반으로 멀찌감치 달아나고 있다. 점점 일본과 수출 구조가 유사해지고 있는 우리 기업에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한국무역협회가 산출한 한·일 수출경합도(ESI)는 2008년 0.456에서 지난해(1∼11월) 0.481로 상승했다. 수출경합도란 양국 간의 경쟁 정도를 가늠한 지표다. 수출 구조가 완전히 일치하면 1, 수출 구조가 전혀 다르면 0으로 계산된다. 한·일 양국의 100대 수출 품목 중 중복되는 품목은 2008년 43개에서 지난해(1∼11월) 49개로 늘어나 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