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배병우] 美 해사의 ‘조선 부채’

입력 2013-02-19 18:18


미국 메릴랜드주의 주도인 애나폴리스는 한적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광을 간직한 항구도시다. 멀리 18세기 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색창연한 건물들이 미국 도시에는 드문, 역사의 향기를 선사한다. 체사피크만에 접한 이 고도는 1863∼1864년 미국의 수도가 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애나폴리스는 1845년 설립된 미국 해군사관학교가 자리 잡은 곳이다. 전 세계를 호령하는 미 해군력의 단초를 캠퍼스에서 확인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다. 하지만 캠퍼스 북서쪽에 자리 잡은 해사 박물관은 꼭 찾아볼 일이다.

미국 독립전쟁 당시 영국인들은 상선 몇 척을 개조해 전투에 나선 미 해군을 해적이라고 불렀다. 그랬던 미 해상 전력이 카리브해와 중남미를 공략한 데 이어 태평양으로 뻗어가며 ‘제국 해군’으로 탈바꿈하는 궤적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기자는 이곳에서 뜻하지 않게 우리 선조들과 미 해군의 운명적 조우를 목격했다. ‘주말의 전쟁(Weekend War)’이라는 푯말이 붙은 1871년 6월 신미양요였다. 설명문에 따르면 당시 아시아함대 사령관 존 로저스 해군소장은 1866년 대동강에서 불 태워진 미 상선 제너럴셔먼호 사건 조사에 대한 조선 정부의 비협조와 개항 거부를 이유로 강화도에 650명의 병력을 상륙시켰다. 이틀간의 전투 끝에 포대를 모두 파괴하고 243명의 조선군을 죽였으나 미군 피해는 사망 3명, 7명 부상에 그쳤다.

특히 기자의 발길을 오랫동안 붙잡은 유물이 있었다. 당시 강화도를 점령했던 미 해병대가 격전지 근처에서 획득했다는 ‘조선 부채(Korean Fan)’였다. 대나무와 한지로 만든 이 합죽선에는 ‘조선의 한 가옥에서 뺏은 것’이라는 문구와 함께 당시 광성보 전투에 참가한 미군 지휘관과 사병들의 이름이 잉크로 빼곡히 적혀 있다. 부채에 적힌 글씨를 판독할 수 있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당시 강화도 수비군을 지휘했던 어재연 장군의 ‘수(帥)’자 기가 미 함정에 걸린 사진이 이 깃발을 빼앗은 휴 퍼비스 이병에 대한 미군 최고 무공훈장 시상 장면을 찍은 것임도 확인할 수 있었다. 전투 후 미군은 광성보를 ‘매키 요새(Fort MaKee)’라고 명명했다. 이는 광성보 공략 중 사망한 매키 중위의 이름을 딴 것으로 사실상 강화도를 점령지로 여겼음을 보여준다.

‘뿌리 깊은’ 미국-일본의 우호관계를 보여주는 자료도 있다. 이미 1875년 6월 우류 소토키치라는 일본 해군사관생도가 미 해사에 입학해 1881년 졸업했던 것이다. 오랜 쇄국정책 끝에 조선이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개국을 강요당하던 순간에 미 해사에는 일본인 생도가 다니고 있었다. 소토키치 생도는 이후 일본 연합함대의 제독으로 승진, 1904년 러·일전쟁 때 제물포 해전에서 러시아 해군을 기습 공격해 격파한다.

최근 센카쿠 열도와 독도를 둘러싼 한·중·일 영토분쟁과 북한 핵실험으로 동북아 해역에 격랑이 일고 있다. 150년 전과 많이 다르지만 미국과 일본이라는 해양세력과 중국·러시아라는 대륙세력의 갈등을 기본 축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물론 중국의 국력이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이 강성하다는 것도 차이다.

해양과 대륙의 완충지대인 반도에 자리 잡은 우리는 어떻게 이 격랑을 헤쳐 갈 것인가. “세계의 흐름을 주시하며 깨어 있어라.” 미 해사의 조선 부채는 광성보에서 전사한 선조들의 아우성을 들려주는 듯하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bwb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