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의원 보좌관 외유성 출장 파문

입력 2013-02-18 19:03

미국의 무역·통상 등 대외관계 입법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 의회 상·하원 보좌관들이 최근 수년간 800차례 이상 외국 정부 초청을 받아 외유성 출장을 다녀온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이들 여행에는 해당국 정부가 고용한 로비스트도 동행해 입법과정에서 각종 외부 청탁에 휘둘릴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8일 보도했다.

신문은 미 상·하원 의원 및 보좌관의 월급 및 여행기록을 공개하는 로비감시기구 레지스톰의 자료 13만쪽을 분석했다. 자료에 따르면 미 의회 보좌관 10여명은 지난해 여름 중국 여행을 다녀오면서 항공기 비즈니스 좌석을 이용했고, 최고급 호텔에서 묵었다. 8일간 일정은 베이징 자금성, 만리장성, 상하이 박물관 방문 등으로 채워졌다. 중국 관리들은 이들을 위한 연회를 주최했다. 보좌관들의 여행 공식 목적은 ‘국가안보’였다.

의회의 다른 보좌관들은 요르단 암만을 방문했다. 사해와 고대도시 페트라 등 관광도 일정에 포함됐다. 숙소는 최고급 호텔인 포시즌스였다. 스위스에선 보좌관들이 헬기를 이용해 알프스산 정상에 올라 고급카페에서 커피를 즐겼다. 이들의 최고급 여행비용은 모두 해당국 정부가 부담했다.

기업체가 각종 비영리재단을 통해 은밀히 스폰서로 나서는 여행도 마찬가지다. 코카콜라, UPS, 제너럴모터스 등은 미국·아시아재단을 통해 보좌관들을 중국에 초청했다. 이들은 리츠칼튼 호텔에 묵으면서 마오타이주를 마셨다.

이런 호화여행은 의회 윤리강령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강령에는 의회 관계자가 외국 정부에 의해 고용된 로비스트로부터 2달러 이상 커피를 제공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외국 정부나 기업, 이익단체 주최 여행에는 사전 승인과 일정 및 비용 보고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로비스트들은 이른바 ‘문화 교류’ 명목으로 보좌관들에게 1인당 1만 달러를 넘는 호화여행을 제공하고 있다. 문화 교류로 둔갑하면 의회에 아무것도 보고할 의무가 없다.

신문에 따르면 2005년부터 6년간 의회 선임보좌관들이 의회에 신고한 문화 교류는 803건이다. 의원들의 문화 교류는 2011년 한 해에만 21건이었다. 이런 호화여행의 최대 스폰서 국가는 중국으로, 6년간 200차례 이상 보좌관들을 초청했다. 대만 정부도 100차례 초청했다.

로비스트들은 이런 여행은 보좌관들이 해당국 문제를 동정적인 시각에서 다룰 수 있도록 하는 효율적 기회라고 말한다. 한 로비스트는 “여행 뒤에는 이들이 반드시 다르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로비스트들은 여행 뒤 보좌관들을 상대로 본격 접촉에 나선다. 선라이트재단 보고서에 따르면 로비스트들은 2008년부터 3년간 여행동반자였던 보좌관들을 같은 기간 200차례 이상 접촉했다. 안건은 주로 무역 또는 외교관계였다.

키프로스 정부의 로비스트 크리스티 스테파두로스는 2009년 의회 보좌관 14명과 여행한 뒤 그해 양국 외교현안 논의차 61차례나 이들과 접촉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문화 교류가 사실상 해당국 정부의 ‘선전용 외유’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가 고용한 로비스트 역시 한국 여행을 다녀온 앤젤라 엘라드 하원 세법위 무역소위 전문위원을 접촉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엘라드 위원 일행은 2006년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초청으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논의차 한국을 방문했었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