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민다나오 CDP센터’ 현장을 가다… 절망이 희망으로, 작은 농촌마을의 ‘기적’
입력 2013-02-18 21:13
필리핀 민다나오섬에 사는 마뭇 루미녹(가명·34·여)씨는 2년 전, 큰아들을 잃을 뻔했다. 어려서부터 반복된 탈장 증세가 갑자기 악화됐는데, 수술비 1만 페소(27만원)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루미녹씨의 아들은 기아대책의 민다나오CDP(어린이개발사업)센터의 도움으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루미녹씨는 지난 13일, “우리 마을에 CDP센터가 없었다면 제 아들은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며 “종교를 뛰어넘어 사랑을 실천하는 CDP가 영원히 우리 곁에 있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기아대책 CDP(Child Development Program)는 1대1 결연을 통해 저개발국가 아동을 후원(신앙·식량·교육)하는 프로그램이다.
2008년 필리핀의 작은 농촌 마을에서 시작된 민다나오CDP가 지역사회를 변화시키고 있다. 학업을 포기했던 아이들이 학교로 돌아오고, 학교로 돌아간 아이가 교사가 돼 지역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 실제 일어나고 있다. 5년이 지난 지금,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학부모들과 인근 공립학교·지방자치단체도 CDP 프로그램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토마스 정(가명·49) 기아봉사단(선교사)이 이끄는 민다나오CDP센터는 지역 내 437명의 결연 아동을 돕고 있다. 1만원 상당의 교복을 구입할 수 없어서, 학용품을 마련할 수 없어서, 육성회비와 교통비를 댈 수 없어서 학업을 포기했던 아이들이 센터의 도움으로 학업을 이어가고 있다. 시골 마을을 벗어나 본 적 없는 아이들은 센터를 통해 생애 첫 여행을 하고, 활동비가 없어 주변만 맴돌았던 아이들은 보이·걸스카우트에 가입하게 됐다.
제니퍼 나바로사(11·여)는 CDP센터를 통해 대학 진학을 꿈꾸게 됐다. 제니퍼는 3년 전 부친이 총기사고로 왼쪽 다리를 잃으면서 대학은 물론 중·고교 진학도 포기했었다. 필리핀의 국·공립대 학비와 생활비는 한화로 월 15만원 정도다. 상대적으로 저렴하지만 농촌의 빈민 아동에게는 마련하기 힘든 액수다. 민다나오CDP센터는 중·고교는 물론 대학 학비까지 지원키 위해 노력 중이다. 제니퍼는 “교육대학을 졸업한 뒤 CDP센터와 공립학교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달마시오 빨까쇼(49)씨는 8명의 자녀 가운데 4명의 자녀를 CDP센터의 지원으로 학교에 보내고 있다. 그는 “일용직 노동으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며 “CDP가 없었다면 아이들 교육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CDP센터가 아이들에게 요구하는 생활수칙은 간단하다. 결석하지 말 것, 선생님 잘 따를 것, 부모님 공경할 것. 이 간단한 원칙이 아이들에게 체화되면서 아이들의 삶 전반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이곳의 활동은 지역사회에서 가시적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아이들 교육에 무관심했던 학부모들이 학부모회를 결성해 활동하기 시작했다. 또, 청소년의 인터넷 카페 출입금지, 초등생의 오후 10시 이후 통행금지 등 학부모회의 결정사항이 자치단체 및 지역 내 교육정책에 직접 반영되기도 한다.
민다나오CDP는 인근 무슬림 지역 아동에게도 교육 혜택을 주기 위해 분주히 노력 중이다. 무슬림 아이들에게도 교육을 통해 가능성을 열어주고 싶기 때문이다. 정 선교사는 “교육을 통한 변화가 이 아이들의 삶은 물론, 필리핀 사회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민다나오(필리핀)=글·사진 최승욱 기자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