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의 발견] (6) 음악의 몸

입력 2013-02-17 18:31


미래의 대중매체가 등장하면 그래픽 디자이너는 어떤 위치에 놓일지 걱정하는 얘기가 한창 나돌았다. LP 재킷 디자인으로 재미를 보던 디자이너들이 CD 커버를 디자인하게 된 때는 차라리 행복한 시절이었다. 요즘 인터넷에서 볼 수 있는 CD 커버래야 고작 72dpi 정도의 작은 이미지이고 그나마 한 곡씩 다운 받아서 듣는 사람들은 음표 아이콘 정도를 볼 뿐이다. 그래서 미국의 한 디자인 비평가는 “가까운 미래에 그래픽 디자이너는 6픽셀 크기의 아이콘을 만드는 직업이 될지도 모를 일”이라고 내다보았다.

하지만 틀렸다. LP가 다시 뜨고 있다. 큼직한 이미지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래픽 디자이너들의 일거리가 당분간 늘어날 여지가 있으나 얼마나 갈진 모르겠다. LP가 CD나 디지털 음원을 대체할 리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기술이 살아났고 미디어가 다양해진 덕에 이미지의 경험이 풍부해진 것은 꽤 의미가 있다. 게다가 ‘음’이라는 것이 단지 신호의 조합이나 파장의 전달 정도가 아니라는 것도 깨닫게 해준다. 내 컴퓨터에 음원이 있는 것과 내 거실에 그 앨범이 있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음악이 몸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조만간 LP가 다시 자취를 감추게 되더라도 음악이 이미지와 떨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형태가 있어서 만질 수도 있다면 더욱 좋겠다.

김상규(서울과학기술대 디자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