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국가 싱가포르서 反정부시위

입력 2013-02-17 18:25

비가 주룩주룩 내리던 16일 오후 4시(현지시간) 싱가포르 시내 중심에 있는 홍림공원. 이곳은 중국 푸젠성 출신의 사업가가 1885년 싱가포르 최초로 설립한 공원이다. 2.3에이커(약 2800여평)에 불과한 조그만 잔디밭이다. 1950∼60년대 정치집회가 자주 열리던 곳이었으나 인민행동당이 50년 이상 집권하면서 이곳은 정치집회보다는 중국식 가극이 공연되거나 직장인이 점심 도시락을 먹는 그런 장소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날은 달랐다. 사만다 치아(32·여)를 비롯한 4000여명의 시위대가 우산을 받쳐 들고 하나둘씩 공원에 모여들었다. 이들이 모인 곳은 영국 런던 하이드파크에 있는 것을 모방해 2000년 9월 정부가 세운 스피커스 코너(Speaker’s Corner).

이들은 “싱가포르를 구하자, 690만명은 안돼” 등의 구호가 적힌 플래카드 등을 들고 3시간 동안 시위를 벌였다. 평화적으로 진행된 시위를 경찰은 진압하지 않았다.

엄격한 사회통제 등으로 잘 알려진 싱가포르에서 이번에 발생한 시위는 1965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라고 AP통신과 BBC방송 등이 17일 보도했다. 이렇듯 대규모 시위가 발생한 이유는 싱가포르 정부가 지난달 이민정책 확대에 대한 백서를 발간한 데 이어 의회가 지난 8일 이를 비준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백서를 통해 현재 530만명인 인구로는 더 이상 경제성장 활력을 찾을 수 없어 2030년까지 인구를 650만∼690만명까지 늘린다는 구상을 밝혔다. 이 가운데 내국인이 380만명을 차지해 절반 가까운 수치인 45%를 외국인 이민자로 채운다는 게 정부 방침이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민자를 받아들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민자 유치가 부동산 가격과 생계비 상승, 생활여건 하락 등으로 이어지면서 내국인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너무 많은 이민자를 허용하면 국가 정체성과 소속감을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싱가포르는 부족한 노동력 확보를 위해 인도네시아나 중국으로부터 노동력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중국 국적의 버스 운전기사들이 임금 차별에 불만을 품고 26년 만에 파업을 벌인 것에서 보듯 이민정책에 따른 부작용도 빈번해지고 있다. 전 야당 총선후보로 시위를 주도한 길버트 고는 “국민들은 변화를 원한다”면서 “정부의 인구정책에 대해 불만을 나타내기 위해 이번 집회를 갖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시위대는 이번 집회가 외국인 혐오로 비치는 것은 우려하고 있다. 앨빈 림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리는 외국인 혐오주의자가 아니며 정부가 국민의 말을 귀담아 듣길 원한다”고 강조했다.

이제훈 기자 parti98@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