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상정] 자기 표절·중복 게재

입력 2013-02-17 17:44


표절이란 타인의 작품을 마치 자기 것인 양 이용하는 행위이다. 저작권 사상이 없었던 로마에서도 표절은 비열한 행위로서 비난받았다고 한다. 남의 글을 훔쳐 쓰면서 마치 제 것인 양 했으니 비난받아 마땅할 것이다. 절도범과 파렴치범을 겸했으니 말이다. 저작권법이 존재하는 오늘날이라면 저작재산권 침해, 저작인격권 침해로 처벌을 면치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 사회에서 표절보다 더 관심의 대상이 되는 듯 보이는 것이 자기 표절이다. 자기 표절이란 물론 자신의 이전 작품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것이다. 자기 것을 쓰는 것이니 애당초 표절이 아니요, 타지 않는 불과 같이 모순된 말이지만 의외로 이 말이 유행을 타고 있다. 아마도 자기 글을 재탕하는 학자를 비난하기 위한 수사적 표현이 아닌가 한다.

일률적으로 비난할 수는 없다

과거에 자기 업적 부풀리기, 논문 ‘왕’이 되기 위해서 재탕, 삼탕한 것을 새로운 업적인 양 부풀리는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다. 그렇게 보면 자기 표절이라는 모순된 말이 이해가 안 되는 바는 아니지만, 그렇게 비난하는 것이 자기 표절 그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업적을 부풀리기한 것 때문이라면 마땅히 자기 표절한 자의 의도나 그 후의 행태를 검토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학자가 메뚜기가 아닌 바에야 이것저것 집적거릴 수는 없는 것이고, 한 우물을 파다 보면 일정 부분 자기 표절은 필연적인 일이라고 할 것이다. 오히려 자기 표절 없이 이것저것 다양한 연구발표를 하는 사람에게 진정한 표절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중복 게재의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 매체, 저 매체에 중복으로 게재하는 것을 비난하는 이유에는 앞서 본 업적 부풀리기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또 하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유체물 거래적 사고에 지배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중양도에 대한 비난이다. 집을 갑에게 팔고 또 을에게 파는 행위가 마땅치 못하듯 원고를 여기저기 파는 행위를 비난하는 것이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집을 이중으로 팔면 한 사람은 필연적으로 그 집에서 살 수 없지만, 원고는 이중으로 팔아도 모두 게재하는 것이 가능하다. 지식의 보급이요 확대다. 하나의 촛불에서 다른 촛불을 붙여도 원래의 촛불이 꺼지지 않고 주위가 더욱 밝아지듯 사회에 이익이 되었으면 되었지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업적 늘리기와 매체 기만은 안돼

물론 그럼에도 편집자나 매체의 편집 방침과의 문제는 남아 있다. 내가 편집위원으로 있는 ‘산업재산권’은 오직 새로운 원고만을 게재해 준다. 새로운 것만이 특허되듯 말이다. 그러므로 ‘산업재산권’에 편집자를 속이고 중복 게재하려고 하면 그것은 기망이요, 우리의 편집업무를 방해하는 것이다. 반면 또 다른 학술지인 ‘디지털재산법연구’는 전혀 개의치 아니한다. 디지털재산법에 관한 글을 한 곳에 모아놓으면 그것이 중복이라고 하더라도 이 방면 연구자에게 도움이 되고 편의를 제공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결국 중복 게재의 문제도 업적 부풀리기나 편집자에 대한 기만 등 그들 사이의 문제를 별론으로 한다면 일반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며, 그 자체의 제한은 저작물의 활용에 대한 제한이자 학문이나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이다.

향후 자기 표절·중복 게재의 문제는 전후 사정을 살펴 비난할 것은 비난하더라도 그 자체만으로 비난의 화살을 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아마도 시간이 흐르면 이 문제도 합리적으로 정착되어 자기 표절·중복 게재라는 이유만으로 비난하는 일은 중세의 마녀재판이 사라지듯 사라지리라고 본다.

이상정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