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웅 목사의 시편] 한끝의 차이가 하늘과 땅의 차이를 만든다

입력 2013-02-17 16:51


목회를 하면서 느끼는 것 중에 하나는 생각보다 성도들의 기도시간이 적다는 사실이다. 솔직히 말해서 적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기도가 중요하다는 생각은 웬만한 사람은 다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실제로 아는 만큼 기도시간을 나름대로 가지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이것이 평소 나의 고민이었다. 얼른 떠오르는 대답은 바쁨과 피곤함이다. 그러나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면 그 대답은 석연찮은 구석이 있다. 왜냐하면 바빠도 하고 싶은 일들은 다 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찾은 대답은 이것이다. 우리는 ‘중요한 것’과 ‘유일한 것’의 차이를 혼동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말 그대로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유일한 것은 약간 뉘앙스가 다르다. 유일한 것은 다른 것으로 대체가 불가능하다. 기도가 유일한 것이라는 말은 어떤 선한 사역도 기도를 대체할 수 없고 기도의 빈자리는 오직 기도로만 채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에 비해서 중요한 것은 대체가 가능하다. 어떻게 보면 약간의 차이요 한끝의 차이다. 그러나 이것은 하늘과 땅의 차이를 만든다. 기도를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는 사람은 실패할 것이다. 왜? 갑자기 더 중요하고 더 급한 것이 닥치면 기도를 안 한다. 중요한 것은 밀리게 되어 있다.

미국의 존 파이퍼 목사는 “사역(ministry)의 최대 적은 놀랍게도 사역 그 자체”라고 주장한다. “사역 자체가 사역을 파괴한다. 목사의 기도생활을 가장 강력하게 가로막는 것은 놀랍게도 사역이다.” 그러면서 그가 던지는 예리한 한마디의 지적은 “신성한 대용품을 조심하라”는 것이다. 그렇다. 항상 신성한 대용품이 문제다. 중요한 것과 유일한 것을 혼동하지 말자. 기도는 중요한 것이 아니라, 유일한 것이요 절대적인 것이다.

사탄이 하는 짓이 이것이다. 사탄은 기도가 ‘중요하지 않은 것’이라고 도전하지 않는다. 기도생활을 아예 버리라고 꼬드기지 않는다. 사탄은 바보가 아니다. 그 대신 순서를 살짝 바꾸자고 한다. 여전히 기도를 ‘중요한 것으로만’ 생각하자는 것이다. 유일한 것과 중요한 것의 차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한끝의 차이를 비집고 들어온다. 그러나 그 한끝의 차이는 어느새 하늘과 땅의 차이가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기도를 아예 버린 것은 아니라는 어느 정도의 ‘종교적 자위감’을 우리에게 안겨주고는, 그 대신 우리의 영적 능력을 송두리째 뽑아가는 것이다. 타락이란 아예 신앙을 버리고 술 마시며 막나가는 것만이 아니다. 타락이란 우선순위의 교체다. 그것도 아주 미묘하게 살짝 바꾸는 것이다. 짐 콜린스는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라는 책에서 ‘최선의 적은 차선이라’고 했다. 영적으로 일맥상통하는 말이 아닌가. 한끝의 차이에 속지 말자. 그 결과가 너무 엄청나기 때문이다.

<서울 내수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