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에게 길을 묻다] (7) 김옥라 각당복지재단 이사장

입력 2013-02-17 16:51


“교회 본질은 예배와 봉사…세상 속에서 ‘돕는 손’ 돼야”

그의 꿈은 ‘진주조개 잡이 어부’가 되는 것이다. 진주조개를 기르는 어부가 오랫동안 진주알을 기다리듯 그는 진주 같은 자원봉사자들이 이 사회에 많이 생겨나길 소망한다.

일평생 자원봉사 정신을 사회에 심어온 김옥라(95) 각당복지재단 이사장은 국내에서 ‘자원봉사’란 개념조차 없던 80년대 한국자원봉사능력개발연구회를 설립해 지금까지 자원봉사 전문인력 2만여명을 배출한 ‘자원봉사의 대모’이기도 하다. 남편 고(故) 라익진 박사의 아호를 따서 1986년 설립한 각당(覺堂)복지재단은 현재 한국자원봉사능력개발연구회, 무지개호스피스,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 지구촌 문화연구회란 4가지 큰 축으로 움직여지고 있다.

그동안 시대의 정신을 읽으며 한국 사회에 꼭 필요한 자원봉사운동을 펼쳐온 온 그를 만나 한국교회가 근본으로 돌아가기 위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며, 이를 위한 기독여성들의 역할은 무엇이고 이 시대에 진정한 자원봉사정신은 무엇인지에 대해 들어보았다.

만난 사람=이지현 차장

-현재 한국교회의 문제는 무엇이라고 진단하시나요.

“한국 교회의 양극화가 너무 심합니다. 교세의 격차, 도시 대형교회와 농어촌 개척교회의 차이, 그리고 교직자의 보수의 차이 등은 세속사회의 빈익민 부익부 현상과 같습니다. 목회자들의 자질 차이도 너무 큽니다. 훌륭하신 설교를 하는 목회자들도 많지만, 목회자의 설교 내용이 영적인 갈망을 채우지 못해 교회를 떠나는 분들도 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가 건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가요.

“한국교회의 회복을 위해 7가지를 제안하고 싶습니다. 첫째 신학교육의 개혁입니다. 신학교육은 학문 중 최고의 학문인 만큼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신학에 입문해야 합니다. 둘째 신학교수 될 사람과 목회자 될 사람의 교육내용이 구별돼야 합니다. 셋째 목회자 교육 과목은 교인들의 요구를 충당해줄 구체적인 교육이어야 합니다. 넷째 신앙의 수양교육이 필요합니다. 가톨릭 신부들이 받는 내용의 기도, 명상 등의 수양 시간을 개신교 교직자들도 가져야 합니다. 다섯째 목회자가 될 사람들은 사회복지 실습을 해야 합니다. 여섯째 어린이·청소년을 위한 기독교교육이 필수적입니다. 일곱째 교회는 여러 층의 교인들의 복합체인 만큼 목회자는 계속 기도와 독서, 성서연구에 심혈을 기울여 설교내용이 신령과 진리, 영감을 주는 내용이어야 합니다.”

-70년대부터 기독여성운동을 해오셨습니다. 한국교회를 위해 기독여성들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여성공동체 성서연구와 여성신학강좌를 열고 공부해야 합니다. 여성의 정체성을 확인해야 합니다. 교회의 본질은 예배와 봉사입니다. 여성들이 교회가 해야 할 사회봉사의 필요성을 교회에 알리고 전교인 봉사를 여성단체가 리드해야 합니다. 강좌를 열고 전문가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여선교회, 여전도회 등 교회 내 여성공동체가 단결해 교회 내 불의에 민감하여 정의를 강물 흐르듯 만들어야 합니다.”

그는 오래전부터 사회봉사와 밀접한 길을 걸어왔다. 기독교사회관이 사회봉사의 전초기지 역할을 할 일제 말기에 감리교 신학생이었던 그는 철원기독교사회관에서 저소득층 미취학 아동들에게 한글과 산수를 가르쳤다. 또 한국걸스카우트 운동과 한국교회여성연합회, 감리교여선교회 전국연합회, 세계감리교여성연합회 활동 등이 모두 봉사활동의 연장이었다.

-국내 자원봉사란 개념조차 없던 시절부터 자원봉사운동을 펼치셨습니다. 자원봉사를 생각하게 된 계기는 무언가요.

“예순이 훨씬 넘어서 시작했습니다. 그 전까지 걸스카우트 일을 했고 그 다음에 감리교 여선교회 일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충분히 일을 많이 했고, 은퇴할 나이에 시작한 거예요. 왜 그랬냐면 걸스카우트 일도 그렇고, 세계여성감리교 세계 회장을 하면서 만날 비행기 타고 남의 나라에 다니면서 외국여성들하고 많이 교제를 했어요. 예순이 넘었지만 이제 우리나라를 위해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자원봉사정신은 무언가요.

“자원봉사자의 또 다른 이름은 ‘옥천(玉泉)’과 ‘반딧불’입니다. 자원봉사자는 바위틈에서 조금씩 솟아나는 깨끗한 샘물이 지속적으로 흘러들어 거대한 탁류를 조금씩 맑게 변화시키는 ‘옥천’, 여럿이 모이면 더 큰 빛을 내는 ‘반딧불’이란 뜻이지요.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잠재의식에 남을 도우려는 마음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조금만 누굴 돕는 일을 하자고 하면 잠재의식이 발휘돼요.”

그가 생각하는 자원봉사의 취지는 기쁨으로 할 수 있는 일을 더불어 하는 것이었다. 모이는 교회가 예배드리는 것이라면 흩어지는 교회는 봉사하는 성도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회를 향해 흩어져서 봉사하는 교회를 만드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죽음을 터부시하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를 창립했나요.

“남편과의 사별로 슬픔이란 늪 속에 깊이 빠져들고 있을 때 마음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어요. ‘죽음을 탁상 위에 올려놓고 공론에 부치라.’ 윤보선 대통령을 앞서 보내시고 외로워하시던 공덕귀 여사와 수개월 전 홀로 되신 박대선 박사에게 죽음을 연구하는 모임을 만들자고 청하자 두 분 모두 찬성하셨어요. 힘을 얻어 평소 알고 지내던 분들께 연락해 91년 4월 2일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회를 출범시켰습니다. 모임은 죽음 준비교육을 하고 슬픔을 치유하자는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또 죽음준비교육 전문가들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왜 죽음 준비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우리가 다 죽잖아요. 누구든지 다 죽습니다. 우리가 죽음에 대해서 전혀 개념도 갖지 않고 준비를 하지 않으면, 원치 않는 일이 생깁니다. 우리가 여행을 가더라도 갈 곳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으면 마음 놓고 떠날 수 있잖아요 죽음도 마찬가지예요. 내가 어디 간다는 것을 알면 편안하게 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우리가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들을 교육할 때 당신이 가서 보살필 환자가 이런 마음이 들도록 여러 가지를 가르칩니다.

-이사장님의 사생관(死生觀)은 무엇인가요.

“죽음 준비교육은 삶의 교육과 똑같습니다. 삶의 연장이 죽음입니다.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지 아름답게 죽을 수 있고, 죽을 때 적어도 후회할 일이 없게 살아야 합니다. 제 개인적으로 바라는 것은 치매에 걸리지 않고 맑은 정신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본고향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으로 눈을 감는 것입니다. 또 임종은 병원이 아닌 내 집에서 가족과 자원봉사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여러분 사랑해 감사해요’라고 말하고 맞을 수 있길 바랍니다.”

-후배 교회여성 지도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글쎄요. 교회여성들이 배워야 할 일, 해야 할 일에 무관심한 것 같습니다. 독서에 힘씁시다. 대학에서 받은 교육내용을 잊어버리고 세상은 쏜살같이 빨리 변합니다. 신간을 읽읍시다. 책을 하루도 읽지 않으면 녹이 쓴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적어도 한 주일에 한 권씩 책을 읽읍시다. 한 주일이 안 되면 한 달에 한 권이라도 꼭 읽읍시다. 또 하루하루의 느낌과 감사한 일을 기록합시다. 시간이 되면 그림그리기, 서예공부하기, 외국어 공부하기도 하길 바랍니다. 그 배운 것들이 필요하게 되어 그것으로 여러분은 사회와 국가에 필요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변하는 시대와 함께 살면서 사회에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김옥라 이사장=1918년 강원도 간성에서 태어났다. 1945년 일본 도시샤(同志社) 여자대학 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귀국, 문교부(현 교육부)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사회활동을 시작했다. 46년부터 걸스카우트 활동, 70년부터는 여성 운동을 했다. 한국교회여성연합회 회장, 한국여신학자협의회 회장, 한국 감리교여선교회 전국연합회장을 역임했다. 81년에는 세계감리교여성연합회 회장에 한국인 최초로 당선돼 민간 외교관 역할도 해냈다. 2007년 국민훈장동백장을 수상했다.

jeeh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