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청사 두달… 국민일보 기자 생활기
입력 2013-02-15 19:23
세종시에는 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뿐만 아니라 해당 부처를 취재하는 기자들도 살고 있습니다. 저는 나이가 열 살가량 차이 나는 후배랑 같은 아파트서 지냅니다.
세종시에서 생활하다 보니 서울에서보다는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이 더 커진 것 같은 느낌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세종시에 내려온 기자들을 대하는 공무원들의 태도는 정부서울청사에서와는 좀 다릅니다. 기자들 역시 여기선 공무원들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더 강한 듯합니다. 동병상련(同病相憐)인 게지요.
며칠 전엔 퇴근하는 후배가 음식 용기를 하나 들고 왔습니다. 한 공무원이 먹어보라며 건네준 묵무침이었습니다. 맛도 좋았지만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습니다. 부서 회식에 기자를 불러줄 때도 있습니다. “가족도 없는데 일찍 들어가면 뭐하냐. 같이 밥이나 먹자”는 말이 퍽 반갑습니다.
세종시에서 보내는 하루는 대개 서울보다 일찍 시작하고, 일찍 끝납니다. 시골 생활과 비슷합니다. 정부서울청사에 출입할 때는 오전 8시쯤에 집에서 나왔습니다. 요즘은 오전 7시30분쯤 숙소에서 나옵니다.
왜 갑자기 부지런해졌냐고요? 그 시간에 통근버스를 타지 않으면 출근이 여의치 않기 때문입니다. 시내버스가 자주 오지 않는데다 시내버스에서 내린 후에도 20분 넘게 걸어가야 총리실이 있는 1동 청사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통근버스를 타면 1동 청사 옆에 내려주니 그만큼 시간이 절약됩니다.
세종청사에서 나갈 때도 서둘러야 합니다. 오후 6시30분에서 7시 사이에 통근버스가 떠납니다. 통근버스를 놓치면 퇴근할 길이 막막해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 시간에 통근버스를 탑니다. 공무원들도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이들이나 어쩔 수 없이 야근하는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이 시간에 퇴근합니다. 가끔 밤에 일을 처리해야 할 때도 일단 통근버스를 타고 가서 숙소에서 일합니다. “집에까지 일거리를 들고 오냐”는 가족의 타박이 없으니 뭐, 괜찮습니다.
저녁 회식 자리는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수도권에서 출퇴근하는 이들이 상당수인 데다가 주변에 사는 이들도 대전, 조치원, 오송, 공주 등에 뿔뿔이 흩어져 있어 회식을 하면 집으로 돌아가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과한 술자리로 이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승용차를 운전해야 하는 이들이 많고, 택시도 거의 없어 취해서는 귀가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혼자 조용히 생각하고 책을 읽는 시간이 늘었습니다. 평소보다 TV 보는 시간도 줄었다는 이들을 자주 봅니다. 가끔은 책 읽는 것 외에 할 게 없어 아쉬울 때도 있습니다. 저녁 여가 시간을 보낼 만한 시설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일찍 퇴근한 날 영화를 한 편 보거나 심야 쇼핑이라도 하려면 조치원이나 대전까지 가야 합니다.
그러다 보니 운동을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날씨가 쌀쌀한데도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하는 이들이 눈에 띕니다. 부부가 함께 탁구장에서 탁구 치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가족이 함께 내려온 공무원들은 “불편한 점이 많지만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난 것은 긍정적”이라고 말합니다. 매일 저녁 야근과 회식으로 주중에는 얼굴 보기 힘들었던 아빠를 저녁에 자주 볼 수 있어 좋다는 딸의 말을 듣고 ‘내려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는 공무원도 있습니다.
아직 세종시와 세종청사는 여러 모로 부족한 점이 많아 불편한 게 사실입니다. 반면에 이전에 미처 느끼지 못했던 소중한 가치를 찾기도 합니다. 세종시에서 생활하는 오늘의 어려움은 나중에 추억이 될 겁니다.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기록될 수도 있고요. 이곳에서 일하는 이들의 모습을, 이곳의 변화의 과정을 지켜보는 게 제 할 일이겠지요. 아직 날씨가 쌀쌀합니다. 건강 조심하십시오.
세종=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