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우 칼럼] 레미제라블 신드롬과 시대 정신
입력 2013-02-15 17:38
영화 ‘레 미제라블’에 대한 반응이 온 나라에 매우 뜨겁다. 이 영화는 작년 12월 하순에 개봉된 후 벌써 약 600만명이 보았다고 한다. 우리 인구 5500만명 중 문화소비자를 3000만명으로 잡는다 해도 20%가 본 것이다. 또한 영화와 함께 도서, 음반, DVD 판매율도 각 분야에서 1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영화가 처음 나올 때 이 정도까지의 반응을 기대하지 않았으므로 이런 폭발적 관심은 우리 사회의 특이한 현상으로 이해되고 있다. 사실 뮤지컬 영화는 영화도 아니고 뮤지컬도 아니므로 성공하기가 쉽지 않다. 배우들은 연기도 하고 노래도 해야 하므로 둘 다 잘 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그러나 그들은 립싱크 하지 않고 직접 자신의 감정이 담긴 목소리로 진한 감동을 만들어 냄으로써 영화와 뮤지컬이 멋진 융합을 이루게 되었다.
영화 제목으로서 ‘레 미제라블’(Les Misrables)은 원래 추방자, 패배자, 버림 받은 자를 뜻하며, 원작에서는 불량자의 화신으로 나오는 여관집 주인 테나르디에와 그의 가족을 가리킬 때 사용된다. 그렇지만,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모두 비참한 인간들이다. 장발장, 판틴, 코제트, 에포닌은 모두 구원을 받을 수 없는 비참한 인물들을 대표한다. 자신을 정의의 화신으로 자처하는 자베르도 그의 자의적이고 폐쇄적인 정의감 때문에 결국 자살로 인생을 마친다. 가장 반반한 인물인 마리우스조차도 어린 시절은 부모 없이, 청년 시절은 그를 키워준 할아버지 없이 평생을 불화 가운데 산다.
저자 빅토르 위고는 ‘이런 인간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이 질문은 바로 종교적 질문이다. 요즈음 현대인들은 종교에 대해 점점 관심을 잃고 특히 기독교에 대해서는 반감을 키워가고 있는데, 이런 영화에 뜨겁게 반응하는 것을 보면 그들은 눈에 보이는 외형적 종교는 싫어하지만 보이지 않는 내면적 영성은 정작 갈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은 영화 레 미제라블 신드롬에 대한 정치적 해석의 한계를 보여준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지난 대선에서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멘털 붕괴에 빠졌던 젊은층이 프랑스 대혁명을 미화하는 이 영화에서 정치적인 카타르시스를 느낀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에 대한 관심은 이미 모든 세대를 포함하는 보편적 현상이므로 이런 설명은 근시안적으로 보인다.
필자는 원작 소설과 뮤지컬과 영화를 다시 반추해 보면서, 이 작품이 처음 나온 19세기에는 최고의 ‘복음 소설’이었고, 21세기에는 새로운 매체에 담아낸 ‘복음 영화’가 되어 우리의 내면을 두드리는 것으로 느껴졌다. 19세기에 빅토르 위고가 정작 고민한 것은 시대정신이었다. 그는 전통의 회복(Restoration)과 혁명(Revolution)을 통한 변혁 사이에 놓여 있는 문명사적 갈등을 장발장의 변화와 미리엘 신부의 목회적 헌신과 마리우스의 현실 참여로 아름답게 그려내었다.
이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은 바로 장발장의 회심 사건이었다. 장발장은 디뉴의 주교인 미리엘을 통해 참된 사랑과 용서를 경험한 직후에 굴뚝 청소 소년 쁘띠 제르베의 돈을 무의식적으로 빼앗는 자신의 모습을 본 후, 그의 속에 내재된 분노와 죄의 참상을 보았고 밤새도록 통곡을 한 후 평생 참회하면서 미리엘을 닮으려고 한다. 그의 회심과 변화는 단지 영적이지 않으며 전인적이며 사회적인 구원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21세기에 영화 레 미제라블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한국 교회가 우리의 시대정신을 어떻게 이해하며, 복음이 우리의 시대정신에 대해 무슨 답을 줄 것인가?에 대해 묻고 있다. 우리 시대도 옛날 빅토르 위고 시대처럼, 남북으로는 이데올로기와 체제 갈등, 우리 사회 안에서는 역사의 정통성을 믿는 보수와 역사의 변혁을 믿는 진보 사이의 갈등, 산업화를 대표하는 보수와 민주화를 대표하는 진보 사이의 갈등, 젊은 세대와 노년 세대의 갈등, 경제적으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들 사이의 복합적인 갈등 속에서 진정한 힐링과 사회 통합을 갈구하고 있다.
복음과 구원에 목말라 하며 아우성치는 우리 사회에 한국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헌신과 사랑으로 날마다 새로워지면서 참된 힐링과 샬롬으로 응답할 수 있기를 사모한다.
(총신대 구약학 교수, 한국신학정보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