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청사 시대 두달] 원룸서 홀로 생고생 “이게 뭐하는 짓인지”

입력 2013-02-15 19:34


1단계 정부청사 이전으로 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은 5500여명에 달한다. 이 중 2000여명은 매일 서울·수도권에서 출퇴근하고, 나머지는 어떤 형태로든 인근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정부는 추산하고 있다.

가족이 함께 이주했건 주중에만 혼자 생활하건 간에 세종시 주변에서 거주하는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한목소리로 “생활 여건이 열악하다”고 입을 모은다. 청사만 서둘러 완공됐을 뿐 주변 시설들은 한창 공사 중이기 때문이다.

세종시 주변에는 문화시설이 없다. 극장은 고사하고 PC방도 찾기 힘들다. 차가 고장 나도 고칠 카센터가 없고, 무엇보다 의료시설이 거의 전무하다. 첫마을 상가에 자리 잡은 소아과를 제외하면 갈 수 있는 병원이 없다. 청사 반경 5㎞ 내에는 주유소도 없다. 목적지와 반대 방향으로 가서 주유를 하고 돌아와야 하는 경우도 있다.

무엇보다 큰 불편을 느끼는 점은 대중교통 부족이다. 5∼10분 내에 버스를 탈 수 있는 수도권과는 사정이 퍽 다르다. 세종시에선 버스를 기다리며 30분 정도를 추위에 떠는 건 기본이다. 예매해 놓은 기차 시간을 맞추기 위해선 오지 않는 대중교통을 탓하기 전에 택시비 3만원을 먼저 챙겨야 한다.

세종청사관리소 관계자는 13일 “현재로선 사용 가능한 모든 시내버스를 총 동원해서 운행하고 있지만 세종시 관내에는 시내버스가 총 38대밖에 없어 추가 운행할 차량 자체가 없다”고 털어놨다. 청사 인근에서 혼자 생활하는 총리실의 한 공무원은 “대중교통 이용이 어려워 세종청사 출퇴근과 점심 식사시간 이동을 위해 중고차를 구입했다”고 말했다.

수도권에서 새벽 통근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공무원들은 업무 전에 파김치가 된다. 그나마 통근버스를 놓치면 지각을 면하기 어렵다. 오후 6시30분쯤에 출발하는 통근버스 시간이 지나면 귀가하기 어렵기 때문에 야근을 하는 것도, 야근을 지시하는 것도 쉽지 않다. 목적지로 가는 차량에 좌석이 없어 일단 다른 행선지로 간 뒤 다시 이동하는 광경도 눈에 띈다.

아파트 한 채에 동료 서너 명과 공동생활을 하는 이들은 겉으로 드러내진 못해도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한 공무원은 “부부도 생활방식 문제로 다투는 경우가 잦은데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던 사람들이니 오죽하겠냐”며 “하루 이틀 볼 사이도 아닌데 생활에서 불편해지면 업무까지 이어질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원룸에서 생활하는 이들 중에는 “혼자 ‘이게 뭐하는 짓인가’라며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경우가 잦다”며 외로움을 호소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가족과 떨어져 생활하는 이들을 위한 상담 서비스가 필요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당초 세종시의 가장 유리한 점 중 하나로 꼽혔던 교육환경도 의미가 반감되고 있다. 첫마을 단지 내에 있는 초등학교 두 곳과 중학교 한 곳은 콩나물 교실이어서 초등학생들이 고교 교실로 옮겨 수업을 받고 있다. 자녀들이 갈 만한 보습학원도 없어 대전으로 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부모들도 많다.

정부는 최근 첫마을 아파트에 응급 환자 치료와 입원시설을 갖춘 시립병원을 상반기 중 짓고, 이른 시일 내에 청사 인근에 중·대형 병원을 유치하는 방안을 강구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청사 부근에는 대형마트와 식당가, 극장 등 생활편의시설의 입점도 추진할 예정이다. 하지만 세종청사 공무원들의 반응은 “되어야 되는 거지…”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는데 이제껏 뭐 했냐는 얘기다.

세종=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