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주목하는 에너지원] ‘에너지 권력’ 재편… G2 패권 다툼 예고

입력 2013-02-15 17:11


제2 ‘신의 선물’ 셰일 가스

많은 사람들이 석유를 대체할 수 있는 무언가가 이미 개발돼 있지 않을까 하고 상상한다. 최근 그런 기대감에 가장 근접한 모습으로 각광받는 대상이 있다. 석유와 달리 이 에너지원은 상대적으로 고른 분포를 보인다. 향후 경제에 미칠 전망도 장밋빛이다. 전 세계 지정학적 역학관계도 그동안 석유자원 배분에 따라 움직였듯 이 새로운 에너지원인 셰일가스를 둘러싸고 새롭게 재편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중동 사람들은 석유를 ‘신의 선물’이라 부른다. 과거 베두인 유목민들의 류머티즘 치료제로 쓰이던 검은 물은 척박한 땅에 막대한 부를 안겨준 검은 금(블랙골드)이 됐다.

하지만 세계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석유는 그야말로 ‘편애’의 상징이다. 매장량의 편재가 심하고 개발을 둘러싼 부침이 큰 탓에 전 지구적 갈등과 전쟁의 빌미가 돼왔다. 대표적인 필수재지만 마땅한 대체재가 없어 석유는 여전히 에너지 안보와도 직결된다. 현대 국제정치는 석유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얽혀 있다.

그림의 떡에서 새로운 대안으로

석유 중심의 세계 질서에 일대 전환을 예고한 것은 셰일가스다. 셰일가스는 진흙이 수평으로 퇴적돼 굳어진 이판암(shale)층에 매장된 천연가스로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연속적인 형태로 분포돼 있다. 그 존재가 1800년대부터 알려졌지만 추출이 어려워 한동안 ‘그림의 떡’으로만 남아 있었다.

채산성이 떨어져 도외시됐던 셰일가스가 에너지 대안으로 떠오른 것은 물의 압력을 이용해 바위틈으로 가스를 모으는 새로운 공법이 고안되면서부터다. 상용화에 성공한 셰일가스는 2000년대 들어 생산량이 폭발적인 증가를 보였다. 매장 형태만 다를 뿐 화학성분상 천연가스와 다름없어 연료와 화학원료로 사용할 수 있고, 석유나 석탄보다 상대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도 적은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경제성 전망도 밝다. 셰일가스는 전 세계 31개국에 약 187조5000억㎥가 매장된 것으로 추산된다. 전 세계가 앞으로 60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매장량 추정치를 열량으로 환산해도 1687억TOE(석유기준 연료 간 비교단위)로 석유의 1888억TOE와 비슷하다.

셰일가스 추출 기술은 ‘타이트오일’도 선사했다. 셰일층에 존재하는 타이트오일은 새로운 시추 기술에 힘입어 생산단가가 배럴당 50∼80달러로 떨어지는 등 경제성이 대폭 향상됐다.

각국 이해관계의 이합집산

셰일가스 혁명의 중심에는 미국이 있다. 미국 내 가스 생산에서 셰일가스의 비중은 2005년 1%였지만 지금은 3분의 1에 육박했고 2040년에는 절반까지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본격적인 생산으로 현재 가격도 1000㎥당 100달러 이하로 떨어진 상태다. 셰일가스 사용비중이 높아지면서 미국 내 탄소배출량도 최근 20년 이래 최저치로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는 구조다.

미국은 셰일층에서 터져 나오는 타이트오일로 세계 최대 산유국의 꿈까지 덤으로 얻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세계에너지전망 보고서에서 “향후 미국의 수입 원유 의존도가 60%에서 30%까지 낮아질 것”이라며 미국이 2017년에는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최대 원유생산국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 이상 아쉬울 것이 없어진 미국은 중장기적인 중동 정책에도 변화를 몰고 올 조짐이다. 중동에 대한 의존도가 크게 줄어든 만큼 더 유연성을 갖게 된 것이다. 지난 6일(현지시간) 미 국방부가 국방예산 삭감 조치의 일환으로 걸프만에 배치한 항공모함을 1척으로 줄인다고 발표한 것도 결과적으로 이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세계 에너지의 ‘블랙홀’로 불리는 최대 소비국 중국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셰일가스 생산을 위해 연간 목표치까지 정했다. 중국석유가스공사(CNPC)와 중국석유화공(SINOPEC) 등 국영에너지기업들이 지난해 할당한 목표 생산량은 300억㎥다. 2008년 중국 천연가스 소비량의 37%로 당시 수입량 44억㎥를 훨씬 초과하는 규모다. 2010년 한 해 집계된 중국 천연가스 소비량은 1090억㎥로 생산량을 늘려도 급증하는 수요를 따라잡기 힘들었다. IEA 보고서는 중국에서 생산될 천연가스 중 셰일가스의 점유율이 2035년에 60%를 넘어설 것으로 예측했다.

경제 성장으로 가스 소비량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중국에서도 셰일가스는 새로운 탈출구가 된 셈이다. 중국의 셰일가스 추정 매장량은 약 36조㎥에 달해 중국 내 천연가스 매장량의 12배에 이른다. 이는 전 세계 매장량의 20%에 해당하는 규모로 품질도 우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러시아는 셰일가스의 존재가 결코 달갑지 않다. 전통의 천연가스 부국인 러시아는 이미 2009년 세계 최대 가스생산국의 지위를 미국에 내줬다. 러시아 정부는 천연가스 가격에 대한 지배력 상실을 걱정하는 모습이다. 러시아 국영 천연가스기업인 가즈프롬도 셰일가스에 대해 “매우 위협적”이라며 가스 시장의 재편에 당혹스러워하고 있다.

지금껏 천연가스는 러시아에 최대 수출품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주로 우크라이나를 경유해 유럽으로 가스를 수출해 온 러시아는 2006년 1월 가격협상 결렬로 우크라이나에 가스 공급을 중단해 같은 파이프라인으로 가스를 공급받던 유럽 국가들이 심각한 가스 부족 사태를 겪기도 했다. 러시아로선 천연가스가 유럽에 대한 자원무기나 다름없었다.

셰일혁명의 빛과 그림자

셰일가스의 미래가 마냥 밝은 것은 아니다. 석유 등과 비교해 청정에너지로 각광받고 있지만 환경운동가들은 셰일가스 채취 공법이 지진을 유발하거나 지표수와 지하수 모두를 오염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채굴 중 새어나가는 셰일가스로 도리어 지구온난화가 악화될 수 있다는 경계론도 있다. 유럽 국가들이 셰일가스 개발을 주저했던 이유다.

셰일가스 생산 주도국들의 태도 역시 중대한 변수다. 독자적 기술력을 갖고 있는 미국과 막대한 매장량을 지닌 중국은 셰일가스를 미래의 주요 에너지원으로 만들 태세다. ‘에너지 독립’을 꿈꾸는 주요 2개국(G2)의 ‘에너지 르네상스’가 에너지 패권주의를 더욱 강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중동산 석유와 러시아산 가스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한국이야말로 이런 흐름에 가장 민감하게 영향 받는 나라다. 한국은 일본에 이어 세계 2위 천연가스 수입국이지만 ‘셰일층에 깃든 축복’에서조차 소외됐다. 당장 다시 그려지는 세계 에너지지도에서 새로운 활로를 찾아 나서야만 하는 처지다.

하지만 한국의 입장에서 셰일가스의 등장이 또 다른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수입 에너지의 다변화로 구매자의 가격 협상력이 커지고, 해외 자원개발과 기술투자에 있어 새로운 기회가 늘 것이라는 전망 역시 설득력을 갖는다. 에너지 문제는 늘 새로운 돌파구와 맞닿아 있다.

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