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현의 사막의 구도자들] 윈스턴 처칠의 ‘No sports’
입력 2013-02-15 17:41
내가 경험한 몬트리올의 겨울 평균 기온은 영하 10도 내외다. 그런데 영하 20도가 넘어가야 춥다는 일기예보가 나올 정도로 이곳의 동장군은 기세가 등등하다. 추위에 익숙한 때문인지 이곳 사람들은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 편이다. 겨울만 되면 동네마다 간이 실외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놓고 밤늦게까지도 즐기곤 한다. 언젠가 몬트리올 대학의 동료 교수네 가족과 함께 야외 스케이트장에 간 적이 있는데 약속한 날의 기온이 영하 15도 내외였다. 그렇게 추운 날씨에도 야외 스케이트장에는 어린 아이부터 어른까지 스케이팅을 즐기는 사람들로 빼곡했다.
볼거리 치중하는 로마식 체육
집에서 차로 몇 분 거리에 있는 실내 스케이트장(arena)에서 열한 살 된 둘째가 하키를 시작한 지 6개월째로 접어든다. 아들 녀석은 11∼12살 아이들을 위한 동네 하키 팀 ‘재규어(Jaguars)’에 입단했다. 그 덕에 이곳의 사회체육 개념을 확실히 알게 됐다. 원하는 아이면 성별을 불문하고 누구든지 받아주며 1주일에 한두 번의 연습과 한 번 내외의 게임을 갖는다. 코치는 자원봉사자 아빠들이 도맡아 하고 모든 심판도 자원봉사자의 몫이다. 그렇다고 만만히 볼 것도 아닌 것은, 모든 경기는 마치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처럼 홈경기와 원정경기로 운영되며 공식 기록이 빠짐없이 나오기 때문이다.
본래 사회체육은 그리스문화의 주요 특징 중 하나였다. 연극, 음악과 함께 고대 그리스인들은 운동을 일상생활의 일부로 생각했다. 구약의 선지자 아모스, 이사야 등과 동시대를 살았던 호메로스의 서사시에 이미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리스 사람들은 영혼을 위해서는 종교를 가졌고, 정신을 위해서는 철학을 했으며, 몸을 위해서는 운동을 즐겼던 것이다. 주요 운동 종목은 달리기, 멀리뛰기, 원반 및 창던지기, 복싱, 레슬링 등이었다.
그리스 시민에게 일상적이었던 운동은 로마시대에도 이어지지만, 로마인은 대제국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위해 스포츠를 이용할 줄도 알았다. 다양한 언어와 문화를 가진 민족들을 하나의 제국 안에 통합하기 위해 로마제국의 지도자들은 수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경기장을 도시마다 지어놓고 갖가지 종류의 스포츠와 서커스 등 볼거리를 제공하여 문화적 공감대를 갖도록 유도했던 것이다. 우리나라 체육은 그리스식 사회체육보다는 볼거리를 제공하는 데 보다 치중하는 로마식 개념에 가까운 것 같다.
그런데 히브리문화는 운동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무슨 운동을 즐겼는지 알지 못하거니와 구약성경에서 ‘운동’이란 단어를 본 적조차 없는 것 같다. 예배와 스포츠와 철학을 통해 인간을 다듬어야 한다는 그리스 사람들의 확신과는 달리 구약성경은 인간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함으로써만 완전해질 수 있다고 가르친다(신 4:1, 6:4∼5 등). 스타디움의 경주를 언급하는 것을 보면(고전 9:24) 사도 바울은 원형경기장에 몇 번은 출입했던 것 같다. 하지만 기독교는 유대교의 입장을 받아들여 스포츠를 인간의 삶에 불필요한 것으로 간주했다. 로마제국을 기독교 국가로 선포한 테오도시우스 황제는 394년에 올림픽 경기를 중단시킨다. 이로써 1000년 이상 계속되던 고대 올림픽이 중단됐고 1896년에 와서야 현대 올림픽이 시작됐다. 로마의 이교문화가 원형경기장으로 가시화됐다면 중세 기독교 도시들은 교회와 수도원과 병원으로 채색됐다. 기독교문화는 스포츠의 무덤이었던 것이다.
4∼5세기 기독교시대를 살았던 사막의 구도자들에게서 ‘운동’에 대한 언급을 찾아봐야 소용없다. 사막에서 마귀와 싸웠던 예수를 본받아 자진해 사막으로 들어간 그들이 어떤 운동 같은 것을 했을 리가 없다. 그런데도 그들이 오랜 연수를 누린 게 신기하다. 안토니오스는 105세에, 스케테를 창시한 마카리오스는 90세에 세상을 떠났다.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황실에서 수십 년을 산 아르세니오스는 사막에서 50년 이상의 세월을 지내고 95세가 되어서야 하나님께로 돌아갔다. 사막 구도자들의 평균 수명은 70세 이상이었다.
캐나다의 사회체육 시스템
하기야 91세를 일기로 죽은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1874∼1965)가 건강의 비결을 질문받았을 때 ‘No sports (운동하지 않는 것)’라고 대답했다니 사막 교부들의 장수도 이해가 갈 법하다. 처칠은 “하루 사과 한 개면 의사가 필요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면은 사막 기독교인들과도 비슷하다. 조지 버나드 쇼(G B Shaw)는 “내가 했던 유일한 운동은 운동을 좋아하던 친구들을 땅에 묻기 위해 따라가면서 걸었던 것뿐”이라고 말했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는 아마 사막 수도자들보다도 훨씬 덜 걸었을 것이다. 나는 건강에 대해서는 별다른 지식이 없지만 건강한 삶을 위해서라면 운동을 많이 하기보다는 음식을 욕심껏 말고 덜 먹는 것이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가 반(反)스포츠주의자인 것은 아니다. 캐나다가 운영하는 사회체육 시스템이 언젠가 우리나라에도 도입됐으면 하고 바라는 입장이니 말이다.
<한영신학대 역사신학>